그리 많이 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지리산은 아흔아홉골이 저마다의 색깔과 숨겨논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옆에 있는 한신계곡과 한신지곡, 큰새골과 작은새골의 모습이 서로 다르다. 능선은 드러나지만 계곡은 숨어 있다. 원시의 순수를 골골이 간직하여 큰 계곡에는 구름을 숨기고 작은 골짜기에는 햇살을 감춘다.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지리산은 시린 겨울에도 폭퐁우가 몰아치는 여름에도 사람을 부르고 매니아를 만들며, 그 깊은 골짜기에 기대어 물이 살고 나무가 살고 이끼가 꽃을 피우며 새가 우짖는 대자연의 한 호흡을 만드는 것이다. 골 없는 능선이 어디있고 물 없는 계곡이 어디 있으랴.
올 여름 비는 어지간히도 짓궂은데 산청을 지나니 새벽부터 또 비가 내린다. '지리산에 한 때 비'라는 일기예보가 있긴 했지만 계곡산행을 하려는 마당에 비는 그닥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비 보다 먼저 백무동에 도착하면 된다."
일단 들머리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고 나면 중간에는 큰 비가 아니라면 돌아 설 수 없다.
휴가철이면 조금만 늦게 도착해도 차 댈 곳이 없기 때문에 4:30에 부산에서 출발하여 백무동에 도착하니 07:00를 조금 넘었다. 계곡 깊고 물이 맑은 백무동 골짜기에는 휴가객들로 붐빈다. 천왕봉과 세석을 가는 산꾼들이 백무동을 많이 이용하는데, 그밖의 한신계곡, 한신지곡, 큰새골, 작은새골, 창암능선, 오공능선 등 샛길이 다양하여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이번 산행은 백무동에서 출발, 아기자기한 沼와 이끼가 아름다운 큰새골로 올라 칠선봉 주능선과 덕평봉을 지나고 직치(바른재)에서 오공능선으로 하산하는 원점산행이다.
큰새골 초입에 나타난 작은 沼
물은 '이기'의 구슬을 토해내고 水吐伊祈璧 산은 '청제'의 낯빛보다 푸르구나 山濃靑帝顔 겸손도 과시함도 지나치지 않으니 謙誇無已甚 여러 벗들과 함께 마주하고 있네 聊與對君看 이기, 청제 → 봄을 관장하는 神
남명 선생이 1558년 지리산을 유람하며 화개동 신응사에서 지은 詩다. 산수의 맑음과 애오라지 벗들과 함께 있으니 더없이 정겹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산에 들어 탁족도 하고 알탕도 하며 들꽃 이름 함 불러보고 산정에 서서 바람 맞으며 산 아래 휘 둘러 보고 내려 오는 것 그것이 산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다.
쓰러진 고목과 바위에 이끼가 돋고 작은 沼와 폭포가 어우러져 살아있는 원시의 숲을 이루는 계곡을 거슬러 오를 수 있는 산행의 묘미는 지리산 골짜기에서나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산이 깊고 수량이 풍부하며 계곡이 많기 때문이다. 간혹 산에서 길을 잃으면 내려갈 때는 계곡을 타고 올라 갈려면 능선을 타라는 말이 있다. 계곡은 우쨋든 아래로 연결되고 능선은 정상과 통하기 때문이다.
상상금지 이대장이 훌럴훌렁 옷을 벗더니 폭포 아래 벗겨진 머리를 디밀어 폭포浴을 한다. 알탕은 담그기라도 하지.... 더구나 튼실한 몸으로 양쪽 폭포를 오가며 혼자 즐기다가 "와 안벗노?"한다. 아직 갈길은 멀고 이미 몸은 비와 땀으로 젖어 벗기도 귀찮다. 김택영이 얼린 막걸리를 꺼내니 녹지않은 얼음 알갱이가 입안에서 사각사각 시리다. 하늘이 계속 흐리고 비가 왔다리 그쳤다리 반복하여 우의를 입었다가 벗었다 한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험하다. 더구나 젖거나 이끼 낀 바위는 매우 미끄러워 바위를 딛는 순간 자칫 균형이 맞지 않으면 휘청휘청한다. 나는 올라가다 사정없이 엉덩방아를 찍었고 내려오다 스라이딩을 또 한 번 했다. 모씨는 온 몸으로 물에 빠졌고 다른 모씨는 몇 번 미끌어지다 손톱이 하나 빠질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도 이대장은 미끄러운 바위를 평지 다니듯 성큼성큼 앞서간다.
10시간 이상씩인 지리산행은 역시 체력이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 적당한 장비도 필요하다. 이대장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단을 오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2~3계단씩 걸어 오른다며 나에게도 권한다.
반쯤 거슬러 왔을 때 계곡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계곡의 폭도 좁아진다.
"좋은 전경은 끝인감?" "더 좋은 경치는 이제부터"
큰새골의 절반은 폭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머지 절반인 이제부터는 이끼와 폭포가 어우러져 원시를 자연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이끼계곡의 시작이다.
이끼계곡을 지나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락을 꺼내고 맑은 소주 한 잔 신령님께 따라 올리고 삼 배의 절을 올린다.
"우짠든동 정상에서 하늘을 볼 수 있게 선심 함 써 주심 감사하겠심돠." 지리산 날씨는 대한민국 기상청이 아닌 지리산 신령님 소관인지라 술 한 잔으로 아부하는 이런 방법이 효험이 있음을 경험으로 터득하고 있다.
"하기사 우리 말고 언 넘들이 신령님께 술 한잔 올리겠노?" 이대장의 말이다.
칠선봉에 도착했다. 지리산 신령님께 아부한 효과가 칠선봉에 올라가니 바로 나타난다. 주능선의 남쪽은 개스가 가득차 보이지 않는 반면 북쪽은 간간히 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산 아래가 조망된다.
백무동으로 내려다 보니 좌측으로 우리가 오늘 내려가야 할 오공능선이 뻗어있고 창암산 금대산 백운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 사대부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쓴 유람기에 보면 김종직은 지리산을 중국의 태산보다 더 빼어난 산이라고 하였고, 유몽인은 지리산을 문장에 비유하여 『사기』를 지은 한나라 때의 사마천에 비유하고, 시에 있어서는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당나라 두보杜甫에 비유하였다. 또 17세기 후반 송광연은 "지리산은 우리나라의 첫번째 산일 뿐만 아니라, 천하의 아무리 큰 산이라도 이 산과 대등할 만한 산은없을 것이다. 만약 공자께서 이 산에 오르셨다면 천하가 크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여 옛부터 지리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동자꽃
모시대
이곳에도 별일 없으면서 꽃단장을 하고 눈길을 끌어보려는 바람잡이들이 길가에 즐비하다. 바람불고 비 많은 계절에 그나마 시절인연이 닿아 산길 가는 바쁜 와중에도 사진 한 장 찍어주려니 폼을 잡고 매무새를 고친다.
아서라! 바람불어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며, 이슬 맞아 지지 않는 꽃잎이 어디 있으랴! 세상 사는 이치가 그러하니 폼 잡을 것 없다.
그나저나 찍은 사진은 어떻게 전해줄 수 있을려나
화신(花信)
홍사성
무금선원 뜰 앞 늙은 느티나무가 올해도 새순 피워 꽃 편지 보내왔다 무슨 사연인가 궁금해 읽어보니 내용인즉 별것은 없고 세월 밖에서는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말만 다를 뿐 같은 뜻이라는 말씀 그러니 가슴에 맺힌 결석(結石)같은 건 다 버리고 꽃도 보고 바람 소리도 들으며 쉬엄쉬엄 쉬면서 살아가란다
덕평봉 아래 선비샘에 도착. 돌무덤이 있고 그 아래 샘이 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주능선에는 많은 어린아이를 포함한 남녀노소 등산객들이 끓는다. 지리종주를 하는 사람들, 세석까지 가는 사람들도 있고 와중에 충남본부에서 오신 일행도 만난다. 새벽 세시에 성삼재를 출발하여 세석에서 일박할 예정이라고 한다.
직치(바른재)에는 원추리 무리와 물봉선, 참취, 이질풀, 누룩치 등이 꽃을 피웠다.
우리의 하산길은 선비샘에서 덕평봉 아래 벽소령 조금 못가 직치에서 오공능선으로 빠지는 것이다. 직치는 바른재 또는 곧은재라고도 하는데 앞쪽 고개가 안당재, 뒷쪽 고개가 뒷당재 그리고 덕평봉 아래가 직치다. 3개의 재가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오공능선에서 산죽밭을 헤치며 나가느라 다 젖은 미스테李
"이대장은 우찌 지리산의 구석구석 길을 그리 잘 아오?" " 낸들 지리산의 모든 길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고..다만 산세 등 지형지물과 추리, 경험 등에 의하는 거지"
이대장의 지리산길 찾는 능력은 가히 신비롭다. 사흘더리 다니는 금정산길도 잃어버리는 산길맹인 나로소는 몇 년전에 와 봤다는 지리산길을 더듬어 올라가거나 내려오면서도 정확하게 어느 지점에 쉴 곳이 있고 어느 沼나 폭포에서 알탕을 해야 하는 지와 어떤 곳에서 점심을 먹고 소주를 마셔야 하는지도 꿰고 있는 산에 대한 지식과 열정, 지리산 열두 시간을 걸으면서 "오늘은 땀도 안났다"고 하는 짐승같은 체력을 지닌 이대장이 미스테李 그 자체다
키높이의 산죽이 점령하고 있는 산 길은 산행하기에 여간 까다롭지 않다. 고개를 숙일 수도 들 수도 없는 눈과 귀를 찌르는 산죽, 특히 비에 젖은 산죽은 선행자에게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해서리 우의와 귀를 덮는 모자 선글라스 등이 필요하다. 이 날도 이대장은 온 몸으로 산죽을 헤치며 지리산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오공능선에서 본 백무동 골짜기. 산죽밭 속에서도 두어 군데의 솟은 바위 전망대가 있어 산아래를 관망한다. 파인 계곡이 한신계곡, 조금 더 오르다 그 왼편으로 빠지는 것이 한신지곡, 사진 바로 앞 계곡이 작은새골, 그 다음 계곡이 우리가 올랐던 큰새골
오전 내내 내주지 않던 하늘이 이제서야 개이니 아득히 함양의 독바위도 보이고
오공능선의 지네바위
( 한 쪽 바위에 서서 찍다보니 두 바위가 입을 벌린 모양인데 표현이 잘 안됐다)
『오공능선의 오공(蜈蚣)은 지네를 뜻한다. 맞은편 삼정산이나 창암산, 금대산에서 보면 지네발처럼 지능선이 무수히 갈라져나와 오공능선이라 부른다. 풍수상 지네 형국은 수많은 지네발 만큼이나 자손이 번창하고 재물이 증식된다 하여 명당으로 친다. 그래서 그런지 능선 곳곳에 무덤이 많다. 또 한옥의 지붕 모서리[박공]나 대문에 지네 형상의 철판[지네철]을 붙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능선이 마지막으로 용솟음쳐 만든 봉우리를 오공산(918m)이라 하는데, 그 위쪽(南) 약 500m쯤에 지네바위가 있기 때문에 그 전체를 오공능선이라 부른다는 사람도 많다. 동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바위 아랫쪽에 지네가 기어간 흔적 같은 게 있어서 지네바위라 부른단다.
풍수의 목적은 명당(穴)을 정하기 위한 것이다. 명당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는 형세론과 형국론이 있다.
形勢論은 먼저 祖山에서 시작된 氣(勢)의 흐름이 主山(鎭山)을 거쳐 혈자리까지 잘 이어지는가를 보고, 명당을 형성하기 위한 조건인 산세의 형태, 즉 藏風(바람을 막아줌)과 得水(물을 얻음)를 살피고 四神砂(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案山(앞산) 朝山(먼산)을 따져서 穴을 찾는다.
形局論은 명당을 둘러싼 산세의 생김새를 보고 臥牛形 伏虎形 蓮花浮水形 등 동식물이나 사물의 닮은꼴 명칭을 갖다붙인 것으로 한국적 풍수의 특징이며, 역시 거기서 키포인트가 되는 곳을 찾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2가지 방법을 혼용하여 사용한다.
명당(穴)은 生氣가 모이는 곳으로, 넓게는 도읍과 마을을 정하고, 좁게는 집터와 무덤자리를 잡는 것으로 풍수의 하이라이트이다. 잘못 짚은 혈은 엉뚱한 경혈에 침을 꽂는 것과 같다. 그래서 어렵다.
지네形의 경우 보통 기가 뿜어져 나오는 입 앞쪽이 혈이 된다. 위의 지네바위는 큰 바위 2개가 문처럼 서 있다. 門은 입(口)이므로 바로 지네의 입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지네능선이기 때문에 지네(입)바위가 되는 것이지, “지네가 기어간 흔적이 있어서…”란 말은 그 (풍수)원리를 잃어버린 뒷사람들이 억지로 갖다붙인 이유일 뿐이다. 보다시피 풍수는 전체 시각으로 보는 것이지, 어떤 하나의 특정 지형지물 때문에 그 전체를 무슨 형국이라 부르는 경우는 없다.
여기서 집구석 망치는 반풍수의 시각으로 함 볼작시면, 지네바위 위에 거의 폐묘된 2기의 묘가 있는데 전망은 좋지만 풍수상 명당이라고 할 수는 없다. 먹이 찾느라고 흔들어대는 지네 머리 때문에 오히려 속시끄러운 자리가 되기 십상이다. 하긴 후손이 돌보지도 않는 자리가 무슨 명당일까?』
『 오공능선에 관한 풍수리지학적 고찰』 이대장의 입담이다. 오공능선 지네바위 아랫쪽에서 백무동 계곡으로 내려와 당연히 알탕을 하고....12시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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