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표」는 우리 나라의 산줄기와 산의 갈래, 산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족보식으로 기술한 지리서이다. 조선 후기의 가장 뛰어났던 지리학자의 하나였던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저작으로서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지리산까지 1개의 대간(大幹)과 1개의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 등으로 조선의 산줄기를 분류했는데, 간(幹)은 줄기이고, 맥(脈)은 줄기에서 뻗어나간 갈래를 지칭한다.
위와 같은 산지 분류 체계는 백두산을 출발점으로 하여 지리산까지를 연결한 국토 전체가 산줄기의 맥으로 연결되어 있고, 강의 수계(水系)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인 특징이다. 즉, '물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는 山自分水嶺에 원리에 의해 대간은 정맥을 거느리고 또 지맥을 일구어 重重無盡의 산을 이루고, 대간과 정맥, 정맥과 정맥 사이로 江이 흐르고, 지맥 사이로 지천이 생겼다는 것이 우리 산하를 보는 산경표에 나타난 산맥에 대한 인식체계인 것이다. 또한 우리 조상님들이 지리산을 頭流山이라고 부르는 것도 백두산에서 그 줄기가 흘러온 산이란 의미이기 때문에 이미 오랜 과거부터 백두대간에 대한 자부심이 확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나라 산맥 분류 체계는 이와 전혀 다르다. 지금의 산맥분류체계는 태백산맥, 소백산맥, 노령산맥, 차령산맥 등 지질학적 분류에 의한 독립적인 산맥체계로서 일제시대 때 우리나라 산맥을 조사한 일본인 학자 고토분지로에 의해 만들어진 논문「조선산악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고토 분지로의 조사목적은 조선의 광물자원을 조사하고 그것을 수탈하기 위한 것이며,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산지와는 맞지않는 분류이다. 문제는 아직도 그 산맥체계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고, 글쓰는 작가나 방송에서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우리나라의 열혈 산꾼들은 1대간 9정맥을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산행 하며 "태백산맥은 없다"를 외치고 있고, 앞으로 통일이 되면 많은 산꾼들이 토막난 나머지 대간을 채우기 위해 백두산으로 백두산으로 몰려갈 것이다. 현재 남한지역에는 토막난 백두대간과 9개정맥이 있고 북한지역에는 나머지 반토막 대간과 1개정간 4개정맥이 있다.
2008.10.11 지리산 천왕봉에서 첫걸음을 시작한 이후 4년여 36구간을 걸어 2012.8.4 남한의 마지막 구간인 진부령에 도착했다. 그동안 이름난 산들과 고갯마루를 지났고, 난생 처음 보고 듣는 봉우리와 재들를 넘었다. 낙동정맥을 종주한 이후 겁없이 시작하긴 했지만, 지날수록 매 구간마다 힘겹고 어렵게 느껴진 것은 젊디 젊은 날을 허송세월로 다 보내고 늦게 시작한 탓일 것이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나에게는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이었다. "인생에 일탈이 없으면 가슴 떨리는 삶도 없다"는 혹자의 말처럼 백두대간 종주는 회사와 집을 오가는 일상에서의 일탈이자 처음 만나는 대자연과의 가슴 떨리는 대화였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진부령까지 4년여의 산행기간 동안 보고 느꼈던 풍경을 모아보았다.
2008.10.11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대간의 첫 걸음을 가벼운 마음으로 내딛다.
노고단의 가을, 하늘가를 거니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만복대 아래 정령치 가는 길에서 만난 여명의 하늘
만복대 입산금지 기간이라 성삼재에서 정령치까지 도로를 따라 걸었다.
함양 백운산
눈을 맞고 선 이정표가 정답게 느껴진 山頂이었다.
육십령 지나 할미봉에서 본 남덕유산과 서봉
2009.1.17 할미봉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삿갓재 대피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빼재까지 갔다.
무룡산을 지나 덕유산 가는 갈림길에서 동업령으로 가는 길목에 눈이 내린다.
거창과 무주를 넘는 빼재 가는 길
거창 삼봉산의 겨울 풍경. 이 날 산길에는 눈이 깊었다.
삼도봉 (경상북도 충청북도 전라북도의 꼭지점)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웠다.
황학산(김천) 가는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이정표. 대간에는 이렇듯 고운 이름의 고개도 있다. '바람재' 에 산들바람이 남실거리는 듯 하다. 표지석 하나에도 생동감을 불어넣을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을 바람재에서 만났다.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간다'는 추풍령은 실상 해발 220m로 백두대간 중 해발이 가장 낮은 곳이다. 옛날 선비들이 과거보러 다닐 때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하는 속설 때문에 이길만은 피해 문경새재나 하늘재로 다녔다고 한다.
낙동강과 금강의 물길이 갈리는 경북 상주의 지기재
속리산 천왕봉에서 본 속리산 능선
천왕봉의 삼파수가 유명한데, 3江 (한강,금강,낙동강)의 수계가 삼파수에서 갈린다고 한다.
속리산 문장대와 문수봉. 세조가 여기서 글을 읽었다고 문장대라고 한다. 문장대 이후의 길도 고난도 암릉의 연속이었다.
밤재에서 올라서 본 속리산
대야산. 막바지에 길을 잃고 버리미기재가 아닌 선유동 계곡으로 내려갔다.
버리미기재에서 올라 서 본 대야산
장성봉에서 본 희양산. 봉암계곡에 봉암사가 있다.
희양산 로프구간도 잊을 수 없다
문경 희양산 구왕봉에서 만난 저녁달
2010.4.17 아직 산중은 봄이 오지 않았고 간혹 생강나무에만 노란 꽃이 피어 봄이 오고 있음을 먼저 알린다. 이화령 가는 길목의 갈색 전나무 숲이 이어지는 2시간의 길이 참 편했다.
조령산에서 새재 가는 대간능선의 수려함.
언제가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대간길 중 하나였다. 길이 험하고 로프를 타야하는 구간이 부지기수였지만 산의 아름다움은 비할데 없이 독보적이라 할만 했다.
조령산 신선봉에서 본 문경새재길
하늘재(계립령) 포암산. 하늘재는 영남과 한양간의 주요 교통로 중의 하나였다.
문경 차갓대 넘어 황장산 풍경
백두대간 중간지점인 작은 차갓재의 지리 여장군과 백두 대장군
솔봉에서 본 풍경
소백산 비로봉
옥돌봉 전망대에서 보는 소백산의 저녁풍경
태백산
태백산
함백산
함백산의 주목
매봉산 풍력단지
닭목재를 지나
강릉 고루포기산에서 본 풍경
능경봉에서 본 대관령 풍력단지
선자령에서
짖궂게 내리는 안개비에 매봉에서 길을 잃고 진고개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구룡령 가는 길
구룡령에서 '딸네미와 백두대간'팀을 만나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1년이라던가 큰 아이 둘 친구, 작은 아이 둘 친구, 아버지 둘 친구. 아침에 구룡령에 도착하니 차에서 막 깨어나 침낭 정리하며 아이들이 하품하던 모습이 선하다. 지리산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오늘은 우리와 반대로 구룡령에서 진고개로 갈 예정이라나~ "나중에 커서 히말라야는 충분히 하겠구나"라고 하니 한 아이가 "절대 안 할 거예요"라고 답했다. 뒤에 설악산 구간에 '딸네미와 백두대간'리본이 있던데, 연휴 일정 때문에 구룡령~조침령~한계령 빼먹고 설악산 2구간 먼저 했다고 한다.
구룡령~ 조침령구간에서 만난 은방울꽃
이 구간에는 잘 생긴 꽃들이 군락을 이루며 많이 살고 있었다.
점봉산에서 본 망대암산. 조침령에서 점봉산 구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숲속으로 진행하여 전망이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점봉산 정상에 이르니 시원한 전망과 꽃들이 무성하여 위안이 되었다. 막판 한계령 내려서는 암릉구간 초입에서 길을 잘못 들어 알바를 하였다. 한 시간 반을 험한 구간에서 헤메기도 하고 다시 길을 찾은 암릉구간에서는 다리가 후덜거리는 경험도 했다.
설악산 대청봉
설악산 공룡능선
설악산의 속살은 공룡능선에 서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근데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메모리 칩을 카메라에 넣지않고 온 것을 알았다. 이 구간 멋진 풍경을 다만 가슴에 담아와야 했다는...대신 소형 똑딱이로...마등령에서 황철봉을 거쳐 미시령까지는 안개비에 젖은 수많은 너덜지대를 가로지르는데 마치 방파제의 테트라포트(삼바리)같아 개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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