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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모음

지리산 통신골과 천왕남릉의 가을

by 하얀 사랑 2013. 10. 23.

지리산 통신골과 천왕남릉의 가을
[염기훈 2013/10/23 14:16]

 

 

 

 

 

 

 

 

 

 

 

 

 

 

 

 

 

 

 

 

 

 

 

 

 

 

 

 

 

 

 

○ 일 시 : 2013.10.12(토)

○ 코 스 : 중산리 - 유암폭포 - 통신골 - 천왕봉 - 천왕샘 - 천왕남릉 - 법천폭포 - 중산리 

○ 인 원 : 4명 (이재구 한영택 박노욱 염기훈) 

 

 

 

   그때 산 아래는 대지가 기지개를 켜고 따사로운 바람에 매화 꽃잎 날리는 화사한 봄이었건만 설산의 빙벽을 이루던 험한 골짜기에서 엉금거리며 바위를 기어 오르던 2010년의 늦은 3월 통신골 산행에 대한 추억이 잊혀지지 않았더랬는데, 이대장 지리산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화사한 가을을 놓칠 수 없다며 일찌감치 10월 지리산행지로 통신골과 천왕남릉을 점찍어 두었다. 

 

   "통상 통신골에서는 세가지 코스가 있습니다. 첫째는, 거대한 바위 신전 같은 골짜기를 지나 천왕남릉 상부를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것,  몇년 전에 우리가 올랐던 코스이고, 둘째는, 천왕봉으로 직등하는 코스인데 아찔한 경치가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상봉에서 지키는 공단의 아가리로 바로 통하는 코스라 우리가 지킬 건 지켜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셋째는, 통천문으로 오르는 코스인데 이번에는 이쪽으로 오를까 합니다."

 

 이대장의 산행개략 안내문인데 요약하자면 통신골을 오르다보면 3분의 2쯤 지난 지점에서 천왕남릉으로 해서 천왕샘으로 빠지거나 상봉으로 직등하거나 통천문으로 가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천왕샘 방향으로는 3년 전에 간 적이 있고, 직등은 위험(?)하니 통천문 쪽으로 가자는 이야기다.

 

   유암폭포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칼바위를 지난 삼거리에서 좌측 장터목산장 가는 길로 들어서서 유암폭포까지 간다. 도중에 법천폭포 위 전망대에서 우렁찬 폭포의 물소리만 시원스레 듣고는 하산시에 들러자며 그냥 지나친다. 통신골 초입인 유암폭포에 도착하니 9시30분, 전에 왔을 때에는 물이 마르고 폭포 아래에 돌무더기로 메워져 있었는데 폭우 등 한바탕의 난리가 있었는지 지금은 볼만하다. 사진 몇 장 찍고 폭포를 감상하고 통신골로 접어든다.  

 

 

  

 

 

 

 

  통신골 중간쯤 올라갔을 때 위에서 한 사람이 내려오고, 조금 있다 아래에서 한 사람이 따라 올라오며 "오늘은 통신골에 몇 안붙었네"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본인은 진주에서 왔다는데 지리산을 혼자 자주 다닌다고 한다. 진주사람들 중에 지리산 마니아들이 많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물론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산 빨치산 활동을 둘러싸고 쓰여진 이병주의 대하소설『지리산』이 진주 사람들이 주인공인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고...       

 

 

 

  통신골에서 천왕남릉과 천왕샘으로 가는 계곡이 나온다. 눈 밝은 박노욱 나더러 "이 골짜기에 용담이 매우 많다"며 여기저기 꽃잎이 마른 풀 몇 넘들을 가르킨다. 한대리는 그건 용담이 아니고 용담 사촌격인 『과남풀』이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이 10월 중순이라 하더라도 쑥부쟁이 구절초 한 송이 없을까 하고 길섶 양지를 눈여겨 보고 올라왔는데 애네들은 벌써 자취를 감추었다. 오상고절(傲霜孤節), 서릿발에도 외로이 꽃을 피우는 절개를 지킨다는 들국화도 오는 계절의 바람을 비켜갈 수 없는가. 

  

  올해에는 들녁이 풍년이라 산위에는 각종 도토리 등 열매가 귀하고 마가목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매를 맺지 않았다. 지난 번에 산청약초축제에 가 마가목 열매가 있길래 사왔다. 가게 주인에게 "지리산에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마가목 열매가 열리지 않았던데 어디서 구해 온 것입니까?" 물으니 "황매산에서 온 겁니다"하고 답했다. 약초축제에 파는 약제라는 것들이 우리가 산에 다니며 익히 아는 것들이 많다.

 

  박노욱부부 며칠전 금정산수목원에 오붓하게 들렀다가 태풍이 지나간 후 떨어진 도토리 몇 알이 눈에 띄어 주웠는데, 마침 그 곳에 단체로 자연학습 온 초등학생들 무리가 있어 인솔교사가 아이들에게 "산에서 나는 열매는 동물들의 겨울철 먹잇감이니 사람들이 가져가면 안된다"는 자연학습교육을 하고 있었더라나. 그 초등학생들과 옆에 있던 대학생 몇 명, 눈초리가 일제히 자신에게 쏠리는 현장학습대상이 되어 주웠던 도토리 무안시리 훠이 모두 뿌려 버리고는 황급히 되돌아왔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산에 열매가 귀하면 사람들이 산에서 채집을 하지 않아야 동물들 식량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다람쥐 등이 먹는 열매는 한정적이고 이넘들 머리가 나빠 먹이를 숨겨둔 곳도 잊어먹기 일쑤이고 또 어차피 썩어버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주워 가도 무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통신골』이라는 지명은 유암폭포 위에서 천왕봉 아래 통천문까지 일직선으로 길게 뻗어내린 골짜기가 환하게 트여 무선통신이 잘되어 붙은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유암폭포 조금 위 통신골 초입에서 위를 바라보면 주능선의 통천문 쪽이 바로 일직선으로 이어지는데, 지리산에서 계곡 치고 일직선상으로 환하게 쭉 뻗으며 드러나 보이는 곳은 통신골 하나 뿐일 것이다. 해서 통신골의 통(通)은 통천문(通天門)과 관련이 있어 보이고, 또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이 있는 곳은 제석봉과 천왕봉의 중간 쯤 되는 곳이며 그 아래 통신골 상부 양편 바위들은 신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인드라샤크라』의 세상을 엿보는 지름길로서의 신과 교통할 수 있는 곳, 즉 통신(通神)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도반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아니다다를까 통천문 조금 못미쳐서까지 오르니 바위 아래 돌로 자리를 고른 기도터가 숨어있다.

 

  기도터 앞 너럭 바위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하는데 이대장이 쉰소리를 한다. "88올림픽 때 전국 명산의 '내노라'하는 도사들이 '국가의 안녕과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그들만의 특별한 기(氣)를 한테 모아 태풍이 우리나라로 오지 않도록 밀어내기로 합의(?)를 하고 지리산에 모여 실행에 옮겼다고 하는데... 기도빨이 먹혔는지 우쨋던 그해 태풍이 하나도 안왔다고." 고기압이 형성되면 태풍이 못올라 오는 것은 맞으니 도사들이 기(氣)로 고기압을 끌어모으는데 도움이 되었을성 싶기도 하여 긴가민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 여기 기도터에 자리 잡았던 도사도 뭐 그기에 일조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리... 

 

  점심자리에서 오침까지 하고 통천문까지 미역줄 덩굴을 헤치며 나아간다. 능선에 도착하니 바로 천왕봉 올라가는 철계단이 있는 통천문 아래다.      

 

 

 

 

 

  개도 부지런해야 더운 똥 얻어 먹더라고 상봉에도 자주 오면 좋은 경치를 만날 수 있는 법, 날이 맑고 시계가 좋아 사방팔방이 한 눈으로 들어온다. 하동의 금오산 너머로 남해 바다가 코 앞이고, 대간에서 가지를 치는 산줄기들은 낱낱의 치부를 드러내 듯 골격을 보여주며 그 틈 사이사이로 인간세상이 박혔다. 이재구 "야, 날 누가 잡았노? 좋다!"라며 황홀경을 내뱉는다. 상봉에는 삼삼오오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부산한데 이대장 뒤로 요염한 포즈로 셀카를 찍는 여성의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천주(天柱) 각자(刻字) 아래 한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점심을 먹고 있어 "가족분들이 천하의 명당 아래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군요, 지금 식사하시는 곳이 천왕봉 '하늘의 기둥'입니다."하고 덕담을 하니 "아, 몰랐는데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천왕봉에는 이름이 새겨진 바위가 많다. 장난스레 새긴 한글이름도 더러 있지만 한자로 새겨져 있는 것도 많은데 조선조 때 부터 일정 때 또는 그 조금 후일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이다. 아마 몇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지리산은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았으니 천왕봉까지 올라오기는 더 어려웠을 터이고 그래서 천왕봉에 오는 사람은 천하의 명산에 아예 징을 먹이려 작정하고 석수장이를 대동하여 왔을 터라. 지금 뒷사람들의 발길에 밟히고 채이고 있으니 부질없는 이름으로 오히려 자신을 욕되게 하고 있다.    

 

 

  상봉에서 내려와 천왕샘에서 목을 축인다. 바위 아래에서 쏟아오르는 물이라기 보다는 바위틈새로 흘러 들어오는 물이다. 천왕샘은 남강의 발원지라 하는데 산에서 보면 바로 남쪽 바다로 흐를 것 같은데 영신봉에서 김해로 이어진 낙남정맥에 막혀 덕천강을 따라 흘러가다 남강댐에서 경호강과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흐른다. 하산하다 천왕남릉으로 진입한다. 천왕남릉은 주등산로로 이용되는 법계사 능선 바로 옆 능선으로서 끝지점은 법천폭포 바로 윗쪽이다. 숲과 암릉 그리고 조릿대 지역을 거친다. 숲은 단풍색이 곱고 암릉에 서면 전망이 좋으나 키높이의 긴 조릿대 지역은 매우 성가심을 각오해야 한다.        

   

 

 

  천왕남릉의 하이라이트 암벽 건너기 

 

  천왕남릉을 따라 한참 내려오다 보면 건너편 로타리산장이 마주보이는 쯤에 암릉에 분재 같은 작은 소나무 몇 그루 예쁘게 자란 곳이 있다. 이곳에서 벌어진 암벽을 건너야 하는데 틈이 1미터 남짓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건너기가 수월찮다. 암벽 사이 깊이가 사람 너댓길이는 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대장 훌쩍 뛰어 건너고 한대리 따라 뛴다. 박노욱은 안되겠다며 돌아 내려가더니 밧줄을 타고 건너편으로 기어 올라온다. 그까이꺼 한 번 뛰어보지 하고 바위 끝에 서니 눈 앞이 아찔하고 오금이 저린다. 아래를 내려보니 미끌어져 빠지면 중상 아니면 사망일 것 같은 예감이 머리를 때린다. 나도 박노욱의 뒤를 따른다.    

 

 

   법천폭포

 

   암릉에서 전망을 즐기다 조릿대 지역을 통과하여 법천폭포에 도착하니 17:30이다. 상봉에서 법천폭포까지 3시간 20분. 법천폭포는 산길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가야 하고 눈에 잘 띄지 않아 늘 지나쳐 다녔는데 이번에 처음 보자니 웅장함이 지리산에서도 손꼽을 만하다. 법계사 앞 계곡을 흐르는 물이라 해서 법천(法川)이라 한다는 말이 있다는 데, 법계사와 천왕남릉 사이에는 깊은골이 있기 때문에 그 말은 맞지 않다고 이대장은 말한다. '물은 흐른다'는 것 만큼 확실한 진리가 어디 있을꼬. 해서 법천(法川)이라 이름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시시비비를 일으키는 생각은 그만 둬도 되고, 웅장한 폭포 그 맑은 물에 진속(塵俗) 때를 떠나 보내고서 중산리로 향하니 오늘 산행도 끝이다. 

 

 그 겨울 통신골의 정취가 아련해 가을 통신골을 찾았고, 2010년 중봉의 가을, 2011년 원대성마을의 가을, 2012년 천왕동릉의 가을에 이어 등 돌리면 이내 그리운 상봉이 버티고 있는 천왕남릉의 가을하늘을 떠돌게 되었다. 

 

 그래서 이맘 때 산에 서면 "낙엽이 져 바람인 줄 알았더니 세월이더라"는 말도 가슴에 새기게 된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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