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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그림

동래 충렬사

by 하얀 사랑 2017. 5. 12.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부산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절한 호국선열의 영령을 모신 사당으로 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한 산 교육장이자 호국충절의 요람지이다.
지금의 충렬사는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윤훤에 의해 동래읍성 남문 안에 충렬공 송상현을 모신 사당 송공사(宋公祠)가 세워지고, 매년 제사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한다.
1624년 선위사(宣慰使) 이민구의 청으로 ‘충렬사(忠烈祠)’라는 사액이 내려졌으며 부산진성 전투 때 순절한 충장공 정발을 모시게 되었다.그 후 1652년 동래부사 윤문거가 송공사가 좁고, 성문이 가까이 있어 시끄러워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는 점과 송상현 공의 학행과 충절은 후학의 사표가 되므로 그 학행과 충절을 선비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현재의 안락동 충렬사 자리로 이전하면서 사당을 창건한 후 강당과 동재 · 서재를 지어 ‘안락서원’이라 하고 사우와 서원으로서의 기능을 갖추었다.1709년(숙종 35)에는 충렬공 송상현과 충장공 정발이 순절할 때 함께 전사한 양산군수 조영규, 동래교수 노개방, 유생 문덕겸 · 양조한, 비장 송봉수와 군관 김희수, 겸인 신여로, 향리 송백, 부민 김상 등의 위패를 모신 별사(別祠)를 옛 송공사 터(지금의 송공단)에 건립했다.1736년 별사에 모셨던 분들을 지금의 충렬사에 모셨으며, 1772년에는 다대진첨사 윤흥신을 추가로 모셨고, 송상현의 첩 금섬, 정발의 첩 애향을 위해 충렬사 동문 밖에 사당을 세웠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충렬사 정화공사를 실시하여 현재의 규모로 보수, 정화한 후 임진왜란 때 부산지방에서 순절하거나 공을 세운 모든 선열의 위패를 충렬사로 옮겨 직책 또는 직위가 부여된 순서에 따라 신위를 모셨다. 충렬사에는 93신위(본전 89신위, 의열각 4위)를 모시고 있다.
충렬사는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ㆍ본전(本殿): 부산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선열을 모신 사당이다. 이 지역에서 전사한 선열 23인, 동래읍성 · 부산진성 · 다대진성 및 부산포해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 위패 4위, 의병 62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현재 수위에 동래부사 송상현 · 부산진첨사 정발 · 다대진첨사 윤흥신의 3신위, 배위에 16신위 · 종위에 70신위 등

모두 89신위가 봉안되어 있다.


 




소줄당 : 옛 안락서원의 교육도장으로 1952년 건립되었으나

정화사업시 장소를 옮겨 재건립



본전 : 임진왜란때 부산지방을 지키시다 순절하신

선열 89위를 모시고 있는 본당

정화 기념비 : 충렬사 정화사업을 기념하여 제작한 비로

호국선열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중흥의 역사적 과업을 이룩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열각 : 동래성에서 기왓장으로 왜적과 싸웠던 두의녀와 송상현공과

정발장군을 따라 순절한 금섬, 애향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본당에서 바라본 충렬사


 돈나무(?)


 본당



임란24공신 공적비 :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동래지방 출신의 24별전 공신의 공적비

 버찌열매

 연못정비중

 부부송(?)

 박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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