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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서해랑길64-2코스(서산구간)

by 하얀 사랑 2026. 2. 9.

▶탐방지 : 서해랑길64-2코스(서산구간)
▶탐방일 : 2026.02..07.일요일.06:25.덕천동 출발
▶탐방로 : 부석버스정류소-모월저수지-해미순교성지-해미읍성
거리/시간 : 23.5km/7시산30분[15.14 km/ 2시간54분(gps기준)
시작점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297-13 (차부삼거리 공중화장실 뒤편)
▶종    점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95-4 (해미읍성 관광안내소 옆)
서해랑길64-2코스는 앞 부분을 건너 뛰고 모월저수지에서 해미읍성까지 진행 하였다.모월 저수지에서 해미읍성까지 진행 하는 동안 광활한 농경지를  지나며 참으로 대한민국이 넓다는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한티 가는길에서두 느꼈듯 해미순교 성지를 둘러 보며 초기 교인들의 어려움을 박해라는 말밖에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해미읍성을 보며 어느 성이나 비슷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애국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요즘 법조인들 각성 하길 바라는 마음의 무게가 참으로 무겁게 다가온다.두눈 크게 뜨고 우리의 민주와 정의의 참 됨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모월저수지옆 양인로에서 내려 시작 한다.

▲서산시 자원회수시설이다.

▲얼어 있는 모월저수지와 서산시 자원 회수시설 굴뚝의 수증기가 평화롭게 보인다.

▲모월저수 너머 멀리 일락산이 보인다.일락산 산자락 밑 개심사까지 가야 한다.

▲이정도면 멀리 보이는게 지평선이라 할만 하다..

▲빼먹은 부석사가 있는 도비산이 보인다.

▲끝이 없을것 같은 야당천길을 지나 간다.

여긴 여당천(?)은 없나?

▲양어장 같기두 하구~

▲도당천을 건넌다

▲도당천이다.

▲왼쪽 멀리 서산자원회수시설두 보이구~~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두 이쁘다.

▲갈대와 능수버들두 한폭의 그림이 되구~

▲도당천을 따라 해미읍성 방향으로 계속 진행한다.

▲뒤를 돌아 봐두 끝이 없는 들판이다.

▲걸어온 도비산 방향이다.도비산 아랫마을이 모월리

▲약간의 아프리카 사막내음두 ..나만의 느낌이만..

▲서산 자원 회수설 건너다..비잉 많이 돌아 왔다.

▲비행장 활주로보다 훨 길다..오른쪽이 군사용 비행장이 있다.

▲도당천의 철새다

▲도비산이 점점 멀어진다.

▲일락산은 조금더 가까이 다가 왔구요

▲사람 발자국 소리에 도당천의 오리떼가 날아 오른다.

▲해미면이 다가온다.오른쪽은 해미천 오른쪽은 도당천이다.해미천 따라간다.

▲기러기들두 발자국 소리에 귀를 쫑긋~~

▲겁많은 녀석둘은 날아 오르구요

▲해미천을 따라간다.

▲해미천의 모습이다.

▲뚝 너머에 뭐가 있나 보다. 거위가 경계를 하는걸 보니..

▲길까지 내려오네..ㅎㅎ

▲이녀석은 전주에 부딪혀 죽은거 같다..

▲해미국제성지 후문을 지난다.후문은 잠겨 있다.

▲가야할 해미읍성과 개심사두 있네~~

▲해미국제성지를 둘러보고 간다.

해미 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도 당시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당한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다.이 박해 기간 동안 해미 진영에 있었던 두 채의 큰 감옥은 잡혀 온 교우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매일 서문 밖으로 끌려 나와 교수형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죽어 갔다. 또 더욱 잔인하게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자리개질이 고안되기도 했고, 여러명을 눕혀 두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꿈틀거리는 몸뚱이를 발견하면 횃불로 눈을 지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쟁이들의 시체로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 한다.한 명씩 처형하는 데 지친 관헌은, 특히 1866년 병인년에서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시에는 시체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생매장을 하기도 했다.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수십 명씩 끌고 가 아무 데나 땅을 파고 구덩이에 산 채로 집어넣고 흙과 자갈로 덮어 버리는 참혹한 행위가 수없이 되풀이 됐다.이렇게 스러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 중 132명의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고 있으나 그나마도 불확실하고 나머지는 이름 석 자 하나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이다.이들이 숨져 간 유적지는 현재 깨끗하게 단장돼 있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교우들의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라 알아듣던주민들의 입을 통해 '여숫골'이라는 지명으로 전해오고 있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 읍성에는 교우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다. 이 나무 위에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서문 밖 순교지에는 1956년에 서산 성당으로 이전, 보존되었던 자리개 돌다리가 1986년에 원위치를 찾아 보존되다가 2009년 1월에 여숫골에 옮겨 보존하고 있다.
1935년에는 서산 본당 범 베드로 신부에 의해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들이 발굴돼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돼 있었는데 최근 1995년 순교자대축일에 원래의 순교 터인 생매장 순교지 순교탑 앞으로 이장됐다.
해미 성지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성지는 한티 고개이다. 이 고개는 당시 죽음의 길로 악명 높던 순교자들의 압송로로 달레의"한국 천주교회사"에도 그 기록이 나온다. 외길이지만 압송로 표지 리본이 눈에 잘 띄게 달려 있어 별어려움 없이 순례할 수 있다.
해미 성지는 교통이 사통팔달(四通八達)로 시원스레 뚫려 있어 다소 거리는 멀지만 당일이나 1박 2일로 순례하기는 안성맞춤이다. 인근에는 수덕사로 유명한 덕산 도립 공원과 가야산, 덕산 온천, 태안 해안 국립 공원 그리고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볼 수 있는 안면도 등이 자리하고 있어 주말 가족 순례 코스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2014년 8월 17일 해미읍성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해미읍성 진남문이다.

▲카페와 기념품점등~~여기서 전통막걸리 한사발 하구 간다.

▲옥사

▲민속가옥

▲멀리 성벽

▲동헌

▲동문(잠양루)

▲청허정 오르며 바라본 동헌

▲객사 너머 서문인 지성루

▲청허정 오름길

▲청허정이다.

▲청허정 : 1491년 병마절도사 조숙기가 축조,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문객들이 시를 짓기도 하였다.

▲청허정 오름계단에서 바라본 해미읍성

▲동헌

▲옥사 : 천주교 신자 국사범을 가둔 시설로 해미순교자약사(1935년)의 기록을 바탕으로 복원

▲동헌 출입문

▲동헌

▲내아 : 지방관아 수령의 가족이 거처 하던 안채

▲해미읍성의서문인 지성루

▲해미읍성에서 64-2코스를 마치고 63-3코스로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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