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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골&명선북릉 산행기

하얀 사랑 2013. 9. 23. 17:39

○ 출발 : 2013. 9. 15 (일)  

○ 코스 : 반선 07:30 - 뱀사골 - 큰얼음쐐기골 - 명선봉(1,586m) - 명선북릉 - 와운마을 - 반선 18:50

○ 인원 : 4명 (이재구 한영택 송건주 염기훈)

 

    반야봉에서 보면 동쪽으로 토끼봉 보다 우뚝한 산이 1,568m의 명선봉이다. 반선에서 뱀사골로 올라가다 간장소에서 오른편 폭포수골로 오르면 반야봉이고, 그 반대편 명선봉으로 오르는 계곡이 이름도 좀 낮설은 큰얼음쐐기골이다. 이번 산행코스는 반선에서 뱀사골 큰얼음쐐기골로 명선봉에 올라 명선북릉을 타고 와운마을을 거쳐 반선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당초 토요일 산행예정이었으나 비소식에 하루 늦추어 일요일로 날짜를 바꿔 잡았다. '가을비는 장인 구랫나루 밑에서도 피한다'는 속담도 있듯이 가을비 와 봐야 얼마나 오겠냐만은 맞아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미룬 것이다. 그런데 토요일 전국적으로 비 많이 오고 전라도 지방은 호우주의보도 내렸다. 4시45분, 배낭을 챙기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소리가 요란하더니 벌써 출발했다고 한다. 당초 4시50분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모두 일찍 나와 출발이 약간 빨랐단다. 우리집에서 동김해 I/C가는 시간에 부산서 출발해 도착하는 시간이 비슷하게 걸린다. 허겁지겁 집에서 나와 동김해 I/C 도착하니 벌써 와 기다리고 있다.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 인월 I/C인근에 차가 이르니 산아래 마을이 운해에 휩싸여 장관이다. 7:30 반선에 도착하여 반선- 와운마을 입구까지 2km 계곡을 산책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어제 많은 비가 지나간 자리 뒤라 아침 공기가 서늘하게 와 닿는다. 와운골과 뱀사골의 합수지점 인근 다리에 이르면 용이 몸을 흔들며 하늘로 오를 기세같다며 이름붙인 요룡대와 큰 바위 아래에 치산들이 신문을 발행하던 석실 안내판이 서 는데, 지금은 그 바위 위쪽으로 테크로 길을 내어 보이지 않는다. 대하소설「태백산맥」에 보면 뱀사골에는 빨치산들이 운영한 종이공장도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석실과도 연관이 있지않을까 생각이 된다.   

 

  아름다운 산길 뱀사골

   '호리병 속에 별도의 천지가 있다'는 말이 있다. 후한의 술사(術士) 비장방(費長房)이 시장에서 약을 파는 선인(仙人) 호공(壺公)을 따라 호리병 속으로 들어갔더니 그 안에 해와 달이 걸려 있고 선경인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는 고사(故事)다. 좁은 계곡은 입구를 찾아들기 쉽지 않지만 그 곳으로 들어가면 비경이 펼쳐지는 지리산 계곡이 이야기에 나오는 '호중(壺中)' 같은 곳이 아닐까? 

 

  반선에서 화개재까지의 뱀사골 9.2km 긴 산길은 넓으면서 평탄하며 계곡에는 반야봉과 토끼봉 명선봉의 거대산군으로부터 흘러드는 물이 사시사철 넘쳐나 용틀임 하듯 휘돌아 나가고, 실타래를 다 풀어 깊이를 재어도 끝닿는 데를 가늠할 수 없다는 짙푸른 소는 곳곳에 요룡대니 탁용소 등 용과 관련된 지명들을 잉태시켰다. 그래서 지리산 산행 초보자도 반선에서 뱀사골을 따라 걸을 만큼만 걷다가 돌아 내려와도 즐거운 트레킹이 될 수 있고, 와운골로 빠져 천년송 솔바람 소리를 곁들인 막걸리 한사발로 지리산에서의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또 함박골이나 폭포수골로 반야봉으로 갈 수도 있고 화개재로 쭉 올라가서 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도 있다.  

   

 

 

 

   뱀사골에서 명선봉으로 올라가는 큰얼음쐐기골 갈림길에 도착하니 9:40분, 반선에서 2시간 정도 걸렸다. 지리 북쪽 계곡에는 늦게까지 얼음이 남아 있어 얼음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몇 군데 있는데  그래서 '큰얼음쇄기골', '작은얼음쐐기골'이란 이란 조금 특이한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지난 번 반야중봉반야중봉에서 내려와 이끼폭포를 구경했던 함박골 반대쪽이 큰얼음쐐기골이다.  

 

   큰얼음쐐기골로 올라가는 계곡은 길이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여 몇 개의 시그널이 선답자들이 지나갔음을 보여주고, 길섶에는 아직 천궁이나  투구꽃 등 작은 꽃들이 막바지 꽃을 피우며 가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어제 내린 비로 아름다운 폭포들이 귀를 울리며 쏟아져 내리고 물맞은 바위는 미끄러워 매번 발딛기가 조심스럽다. 이 계곡도 이끼가 좋다고 하는데, 이끼란 넘들은 물을 맞으며 연초록으로 파릇파릇 돋아나는 6월이 좋은 법, 그맘때 쯤이면 지나다니기가 미안해 발을 들고 다녀야 할 지경이지만 가을로 접어드는 지금은 색이 짙어지고 잎도 말라 간다.     

            

 

 

 

 

 촛대승마

 투구꽃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터

   큰얼음쐐기골로 올라가다 보니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터가 보인다. 빨치산 경남도당은 자기 관할지역인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대원사골, 동북쪽의 칠선골, 동남쪽의 중산리 등에 터를 잡았고, 전남도당은 노고단과 반야봉을 잇는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뻗어내린 화엄사골, 문수사골, 피아골이 관할이었는데, 전북도당이 이곳에 아지터를 잡은 것은 반야봉 줄기를 타고 내린 뱀사골이 전북 남원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즉 반야봉 아래 삼도봉(날나리봉)이 경남, 전남, 경북의 도경계 지역이니 지리산에 와서도 자기네 관할구역에 각자 터를 잡은 것이다. 전북도당 위원장이었던 박영발 비트가 건너편 반야봉 아래 폭포수골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도 그런 연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현상의 남부군은 이들 지역이 아닌 주능선을 따라 장터목에서 명선봉에 이르는 남쪽의 거림골, 대성골, 빗점골과 북쪽의 백무골, 한신골, 영원사골이었다고 한다.       

 

 

 

 

 

   계곡산행을 하다보면 8,9부 능선 쯤 올라가면 계곡이 좁아지고 물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러다가 산사면의 가파름이 완만해지고 관목숲이 나타나면 능선에 거의 다와 가는 것을 느낀다. 여느 산이나 마찬가지지만 앞장 선 선행자는 숲을 헤치며 나가느라 고생하기 마련인데 얼굴에 걸리는 거미줄과의 싸움도 만만치 않고 전날 비라도 내려 숲이 습하면 가장 많이 젖게 된다. 게다가 큰 산에서 미세한 차이로 길이 엇갈리게 되면 당황하게도 되는데, 이대장 매번 이런 고생을 즐거이 해주니 뒤따라가는 일행들이야 거저 먹기지만 나로서는 지리산 경력의 차이에다 체력의 차이까지 겹쳐 그마저도 쉽지않다. 해서 항상 2~30미터 쯤 뒤쳐져 따라간다. 아 쉬, 젊었을 때 좀 다닐걸. 

      

   13:26 능선에 도착했다. 명선봉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다. 아마 총각샘이 있는 그 어디쯤 같다. 쉬엄쉬엄 오다보니 반선에서 거의 6시간 걸린 셈이다. 능선에는 산객 서너명이 눈에 뛸 뿐 한적하다. 능선을 따라 명선봉으로 이동하여 전망좋고 그늘진 곳에 자리를 편다. 올라오며 미끌어져 빠진 양말을 짜서 걸어놓고 멍든 무릎에 약을 바르고 나니 편안하다. 능선따라 희미하게나마 천왕봉도 보인다.  산아래로 명선남릉 좌우로 왼골 산태골 그 아래 빗점골과 삼정마을이다. 

 

   잠시 전망대에 서서 안목을 넓히고 점심 도시락을 꺼낸다. '함께 밥 한 번 먹지 않았으면 친해도 친한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아침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은 산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은 하산하여 단골집에 가서 세 끼를 매번 함께 하니 밥그릇 수로 따지자면 친해도 너무 친해야 하는 사이인데, 산 올 때 말고는 서로 친한 척 할 일도 없으니 그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만 우쨋든 친한 척 술잔은 돌린다. 옛말에 '가을밤에 술거르는 소리와 여인의 치마끈 푸는 소리야 말로 듣기 좋은 두 가지 소리'라 했는 데, 한 가지 추가 하자면 산도반들 입에 술 넘어가는 소리라. 마른 입술을 적시며 목구멍을 타고 넘는 그 소리 듣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이니 곧 주류일체가 산에서 일심동체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나무가 괜히 흔들리는 법 아니듯 사람들은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며 산다. 산에 서는 즐거움은 그런 바람을 떠나는 것으로 부터 오는 것이다. 무채색의 수채화 같은 주능선을 바라보매 산은 산이고 하늘은 하늘일 뿐, 흐릿한 하늘가로 몇 점 구름만이 풍경을 이루며 떠돈다. 숲이 이루는 산색은 가을을 향해 짙어져 가고 쑥부쟁이 구절초 몇 송이 숨쉬고 있다. 작은 전망바위에 앉아 미간에 내리는 햇살을 받으며 오랫동안 이렇게 앉아 있는 상상을 한다. 그러나 "뭐하노, 가자"하는 외침이 현실이 되어 돌아온다.    

 

  하산은 명선북릉을 타고 와운마을로 가는 길이다. 좌측으로 반야중봉에서 뻗어나가는 심마니능선이, 우측으로 삼각고지에서 줄기를 쳐 나가는 삼정능선이 명선북릉을 감싸고 있는 아늑한 능선이지만 숲이 우거져 전망은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연하북릉과 더불어 악천후 때 주능선에서 탈출로로 하산이 가장 쉬운 산길 중 하나로 꼽히며 와운마을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와운마을 바로 위 와운계곡에 도착하니 오후 6시다. 명선봉 바로 아래 연하천산장에서 발원하여 와운마을 바로 아래에서 에서 뱀사골과 합류하여 반선으로 흐른다. 여기서 땀을 씻고 나니 날아갈 듯 기분이 새롭다. 와운마을은 그리 많지 않은 가구들이 민박집을 하며 오손도손 살고 있는데 마을 뒷편 천년송으로 더 알려진 마을이다.    

 

 

 

  와운마을 주막집에 앙증스럽게 만든 목메달이 주렁주렁 달렸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은 봤어도 목메달은 처음인데, 여기 다녀간 여러 사람들이 나름의 사연들을 적어 달았다. 대개 그렇지만 가장 많은 것이 건강이고, 다음으로 애인구함 행복 제대 등 같다. 여기 다녀간 모든 이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산휘천미(山輝川媚)란 말이 있다. 돌이 옥을 감추고 있으면 그 때문에 산이 빛나고, 물이 진주를 품고 있으면 내가 그 때문에 아름답게 된다는 말이란다. 우리는 혹은 사람들은 지리의 산휘천미나 호리병 속의 선경을 꿈꾸며 계곡이나 능선에서 종종걸음을 하다 다리쉼을 한다. 그러면서도 산위에 서면 오직 푸른 하늘만 우리 위에 있다는 것을 안다. 존레넌의 말마따나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 easy if you try.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