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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모음

지리산 천왕봉 일출과 운해

by 하얀 사랑 2012. 7. 13.

지리산 천왕봉 일출과 운해
[염기훈 2012/07/13 12:23]

○ 출발일시 : 2012. 7. 6(금) 04:30 교대앞
○ 코스 및 일정
    - 백무동 08:00 → 창암능선 → 칠선계곡 → 마폭포골(점심) → 중봉 → 천왕봉(1박 2끼 : 일몰+일출)
    → 제석봉 → 소지봉능선·­창암능선 → 백무동   
   ※ 泊장소는 천왕동봉 아래이고, 천왕샘에 물 뜨러 가기에도 가까운 곳임
○ 산행자 : 이재구, 송건주, 한영택, 염기훈 

   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지리산 작품에 지리산의 일렁이는 운해 사이로 황홀한 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더러 볼 수 있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나도 언젠가 그런 지리산의 황홀경을 맛볼 날 있을 것이란 기대를 안 하고 산에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運七氣三이라 쉽지않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사창립 기념일 3일 연휴를 맞아 금요일 새벽에 출발하는 1박2일의 일정, 마침 저기압이 지나고 적당히 비가 오는 계절인만큼 좋은 운해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수요일까지만 해도 금요일 별 일 없을 것으로 보이던 일기예보가  목요일이 되니 금요일은 비가 매우 많을 것이란다. 금요일, 종일 추적거리며 비가 내리니 토~일로 연기하여 산길을 나섰다.   

     인민군 사령부터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하여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이내 산행에 나선다. 1박을 하자니 군대에서 완전군장하고 뺑이칠 때 이후 가장 무거운 짐인듯 어깨가 묵직하다. 텐트 멘 넘은 더 할 것 같다. 

   백무동에서 창암능선으로 올라 칠선계곡으로 진입하는 코스는 이번이 세 번째다. 백무동에서 창암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은 출입제한구역이었으나 둘레길을 새로 개척하여 백무동에서 창암능선을 가로질러 칠선계곡 입구인 추성동 위 두지동까지 샛길을 열어놓았다.  

   백무동에서 약 30여분 올라가면 인민군사령부터와 대규모 집터가 있다. 전에 보니 입구에 인민군사령부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무장공비 모양을 한 마네킹을  세워놓았더랬는데 자기네들 보기에도 흉물스러웠던지 지금은 치워버렸고 대신 간단한 설명을 해놓은 펼침막을 걸어 놓았다. 인민군사령부터 바로 위에는 古店洞 이란 마을터는 가락국의 무기를 만들던 곳으로 가락국 이후에는 농기구를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40여가구가 정부의 소개령으로 이주했다고 하니 몇십 년 전까지는 마을이 있었던 모양이다.     

    창암능선 안부(鞍部)에 올라서니 09:40분이다. 산길은 계속 안개에 묻혀 있다. 잠시 쉬면서 전화하여 기상청의 지리산 날씨를 알아보니 비올 확률 20%라고 한다. 비가 안온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안개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 보다 좀 가는 비를 '는개'라고 하는데 숲에는 는개가 계속된다. 이대장은 지리산신령님, 천지신명님, 일월성신님을 불러대며 우짜든동 날씨 개이게 해 달라고 쭝얼쭝얼거린다. 산을 향한 그의 정성이 지극하다 못해 감동적이다. 안부에서 잠시 쉬었다 칠선계곡 방향으로 하산한다. 멀리 칠선계곡에서 들리는 귓전을 파고드는 폭포소리가 시원하다.   

    칠선폭포 10:40 

   귀로 느끼고 눈으로 즐기는 여름 계곡산행의 백미, 폭포!      
   칠선폭포까지 창암능선 안부에서 1시간 걸렸다. 칠선계곡은 입구인 추성동에서 천왕봉까지 수많은 폭포로 비경이 즐비한데 선녀탕, 옥녀탕, 비선담, 칠선폭포, 대륙폭포, 삼층폭포의 물줄기를 따라 합수골로 이어진다. 합수골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두 갈래의 물줄기가 만나는 마폭포가 나온다. 오늘 산행은 마폭포에서 점심을 하고 천왕봉까지다.  

   칠선계곡은 이번이 네번째다. 처음 산행은 2008년 10월 추성동에서 공단직원들과 동행하여 천왕봉까지 간  가을산행 후 산정에서 맛본 눈부신 상고대의 추억으로 좋았고, 두 번째는 2011년 9월 제석(봉)골로 오르면서 거쳤고, 세번 째는 2011년10월 대륙폭포골로 오르면서였다. 앞의 세번은 모두 가을 무렵인데 계곡산행의 백미인 폭포가 원만할리 없었는데, 이번 산행에는 며칠전 오랜 가뭄끝에 비가 내린지라 칠선폭포와 대륙폭포의 웅장함을 五感으로 느낄 수 있다. 날이 맑았으면 하는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욕심이 과하면 결국 채울 수 없는 법!  

 

  대륙폭포 11:08

  우측 물줄기가 주폭포였는데 큰 비에 물줄기가 좌측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부산의 대륙산악회에서 처음 발견해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하는 떠도는 이야기다.

  칠선폭포에서 대륙폭포로 가는 사이 몇 사람의 산꾼을 만났다. 앞 사람들과 떨어져  길을 잃고 한 시간 가량 우왕좌왕하다 되돌아 내려왔다고 한다. 길을 잘 모르는 사람같다. 천왕봉까지 갔다가 오후에 내려갈 예정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될런지 모르겠는데 다시 꾸역꾸역 대륙폭포 쪽으로 올라간다. 산, 특히 지리산 같은 깊은 산에서 길을 잘 모르면서 무작정 산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이대장이 말한다.  대륙폭포 아래 쯤 제석(봉)골 합수지점 인근에서 삼층폭포 방향으로 진입한다.  

  3층폭포 11:34

  

   바위가 절구통을 닮았는데 절구는 아니다. 뭐꼬? 

  13:36 마폭포에 도착

  마폭포란 이름은 경상도식의 '그냥'의 의미랄까 '마~'란 뜻의 마폭포라는 이바구도 있고 마지막 폭포란 의미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대장 왈~ "위에도 폭포가 "마~ 많이 있다" 

  마폭포 옆 너럭바위에 위에 점심 자리를 잡으려 하니 해가 짱~ 나고 산아래가 환하다. 볕이 뜨거울쏜가 그늘에 자리를 비켜 깐다. 송건주 삼겹살을 5kg이나 사왔다. 코펠에 불을 댕기고 쌀을 앉히고 삼겹살을 굽는다. 할당된 소줏병을 꺼내고 이대장은 술 한 잔 따라 "지리산신령님, 천지신명님, 일월성신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날이 개이게 챙겨 주시고....중얼중얼...." 넙죽 삼 배 절하고 소주를 흩뿌린다. 

   시원한 캔맥주에 소주를 타 한 잔씩 들이키니, 좋다!.

   "이래 행복해도 되나?"     

 

 

 

   천왕봉이 가까와 지니 산사태로 허물어져 내린 골짜기가 드러난다. 천왕봉과 중봉 아래 몇 군데 이런 곳이 있다. 보기에는 좀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자연재해는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현상이니 오랜 세월이 지나면 상채기에 새살이 돋듯이 풀과 나무가 자라지 않겠는가?  

   쉬엄쉬엄 이름없는 폭포와 물줄기를 건너며  중봉과 천왕봉 사이 산마루에 도착하니 17:40이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오느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천왕봉(1915M) 18:45  

  멋진 일몰을 꿈꾸고 산을 올랐으나 막상 천왕봉에 도착하니 다시 하늘은 연무가 허공을 뒤덮고 視界는 없다. 실망이지만 내일 새벽을 기약하고 천왕봉 아래 야영지로 내려간다. 

  야영자리에 핀 양지꽃

  천왕봉에서 5분가량 내려와 좌측 동봉 샛길로 들어가니 야영할만한 적당한 자리가 숨겨져 있다. 천왕동봉 능선길이다. 텐트를 설치하고 텐트바닥에 습기가 올라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을 한겹 깐다. 밤이슬이 내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바닥에 까는 비닐 한 장을 사방으로 줄을 매어 지붕으로 삼으니 훌륭한 저녁자리가 만들어졌다. 지리산에서의 첫 야영이다.

  준비물 삼겹살 1.5kg할당받은 송건주, 무려 5kg 사왔다. 점심에 2kg 구워먹고, 남은 3kg 다 먹을려니 끝이 없다. 굽고 또 굽고...다 먹고 나니 밤 11시다. 신선한 숲의 공기 탓인지 산에서 마시는 술은 취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리고 아침에 숙취도 없다.   

  동쪽에서 달이 떠오른다. 보름이 지난지 며칠이 지난지라 조금 이지러들었지만 밤하늘을 밝히는데 부족함이 없다. 끊임없이 연무가 횡행하여 별자리들이 환하게 나타나는가 하면 금새 사라지곤 한다. 그 연무 사이로 산 아래서는 잘 볼 수 없는 별자리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이 밤하늘 풍경을 어찌 넷이만 즐길 것인가!  박노욱에게 전화하여 약을 올린다. 
   "야~ 저기 니 별도 하늘에 하나 있다. 너거 마누라 별도 저기 떠있네~" 

   "불황으로 회사에서 목이 잘린 사내가 방구석에 처박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그것도 지겨워지자 책꽃이에서 『벽암록』이라는 어려운 책을 꺼내 보았는데 거기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나

    옛날 마조 선사라는 분이 나이 들어 골골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 절 원주가 찾아와서 "요즘 법체 청안하신지요"라고 문안하자 선사는 웃으면서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야"라고 대답했다나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알 수 없어 늙은 호박처럼 쭈그러진 암자 노스님에게 물어보았더니 스님은 무심한 듯 눈을 감고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까지 살면 더 좋고"라고 말해 주었다나

    그는 섣달그믐 밤 문밖으로 나서다가 찬바람 불어와 호롱불마저 꺼져버린 듯 답답한 생각이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마침 그때 비로드보다 검은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 새로 돋아나고 있었다나

       -  홍사성의 「내년에 사는 법」중에서 -        

   도시의 전등불에 가려 밤하늘 조차 잊고 사는 세상, 산꼭대기라도 올라 달보고 별보고 행복하면 그 선 자리가 바로 서방정토 극락세계라!    
 

    천왕봉 일출

    새벽,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쒸! 늦었다. 기상!" 후다닥 테트 밖으로 나오니 날이 희끄므레 밝아온다. 일출을 봐야 한다는 마음에 서둘러 천왕봉으로 올라간다. 5분거리다. 벌써 몇 사람이 와 있다.  

   근처에서 비박한 사람들도 있고 장터목 산장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해는 구름 위로 천천히 떠 오른다.  천왕봉 일출은 3대가 적선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만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장마비도 그치고 저기압이 지나는 덕분에 산아래는 운해가 가득하다. 얼마나 학수고대하던 장면인가!  

 

 

 

 

  쏟아지는 찰나의 아름다움이란 눈길을 잡아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묶어두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이런 모습을 그대로 두고 돌아선다면 모진 그리움에 두고두고 몸을 떨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새 천왕봉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중에 반바지 차림의 낮이 익은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김형찬부장과 김명식과장이네~ 금요일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동서들과 종주를 하고 있다고 한다. 금요일 같으면 비가 많이 왔을텐데 고생한 모습이 선하다. 천왕봉에는 젊은이들도 많이 왔고, 카메라를 거치해 놓고 기다리는 사진쟁이들도 있고, 양코쟁이 청춘남녀들도 올라온다. 

  여명의 하이라이트가 지나고  다시 야영지로 내려가 아침을 준비하고 텐트를 걷어 말린다. 칼칼한 조기찌게 매운탕이 입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천왕봉을 거쳐 제석봉에 도착했다. 조금 있으니 카메라 장비를 멘 한 사람이 둘레둘레 살피며 온다. 엊저녁과 아침에 천왕봉에서 사진 찍던 사나이다.

    "등산이 줍니까, 사진이 줍니까?"
    "사진 찍으러 다닙니다."

    디카와 필름카메라를 메고 다닌다고 하니 사진쟁이다. 매주 산에 온다고 하니 산쟁이인 것도 같다.

    언제 와도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곳이 제석봉이다. 잡목과 풀들이 키를 다투지 않고 살아가고, 바위조차 몸를 낮춰 잎을 여윈지 오래된 고사목들이 주인 노릇을 하는 평원에는 하늘 맞닿은 곳으로 이슬이 풀꽃을 키우며, 바람은 香花를 품어 꽃의 속살을 드러내고, 인간은 에둘러 가는 나그네일 수 밖에 없는 곳!  "나도 그니들과 함께 이슬 맞으며 새벽 안개에 가슴 시리다 살갑게 맞아드는 동살 받아 낼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하는 상상에 젖어들며 제석단에 들러 물을 담고 하산길에 나선다.

    

  꿩의다리

  칠선계곡을 오르는 사이 계곡 군데군데 꿩의다리가 꽃대를 올리고 있었는데 다음다음 미루다 그만  놓쳐버렸다. 제석봉에는 꽃들이 만발하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지금은 어중간하게도 꽃철이 아니다. 하여 백무동으로 내려오다 길섶에서 만난 몇 송이가 눈길을 잡아챈다. 소담스런 모습이 이쁘다.    

 창암능선

   제석봉에서 마천면의 창암산까지 흐르는 능선을 창암능선이라 한다. 백무동 하산길은 장터목 산장에서 길따라 하산하다 이 소지봉 아래에서 왼편으로 빠진다.  그런데 지리산 정규 등산로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길이 패여 바위돌길을 듬성듬성 걸어야 하는 고행길이다. 백무동 하산길도 대부분 바윗길이라 여간 지루하고 재미없는 길이다. 해서리 이대장은 소지봉 아래에서 창암능선을 타고 쭉 가다 아침에 넘어간 칠선계곡 안부에서 백무동으로 가자고 한다. 창암능선 길은 길이 편안하고 푹신푹신하여 걷기 참 수월하다고.

    창암능선 길이 좋기는 한데 길기도 하더라!

    아침에 차를 대어논 백무동에 내려오니 햇살이 따갑다. 이틀간의 산행으로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갈아 입을 옷을 챙겨 계곡으로 내려가니 계곡에는 갑남을녀의 행락객들이 계곡 바위 위에 자리잡고 만푸장하게 먹고 마시고 있다. 그런다고 알탕을 아니할손가!  아랫쪽 바위 뒤로 가니 마침 인적이 없고 물길 휘도는 맑은 곳이 숨겨져 있다.

   "첨벙!" "와~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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