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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모음

지리산 천왕봉 동릉

by 하얀 사랑 2012. 10. 11.

○ 일시 :  2012.10.6 (토)

○ 코스 및 일정 : 중산리 07:35 - 순두류 - 천왕동릉 [점심] - 천왕봉 - 깊은골 - 중산리 18:20

○ 산행인원 : 6명 (이재구 박노욱 한영택 김경환 송건주 염기훈)

 

    "그때쯤이면 정상부근의 높은 산 깊은 골짜기엔 단풍이 불타고 있을텐데, 아, 그 칼날 같은 능선길에서 바라보는 짜릿한 전망, 가슴에 안길 듯이 다가오는 천왕봉의 장관, 아찔한 벼랑 사이로 보는 황홀한 단풍잎을 느끼러 가봅시다."

     지리산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아련한데 지리산에 가자면서 詩 같은 글을 적어보내면 어쩌자는 말인가!  그러나 매월 첫째 토요일로 정해놓은 산행이라 단풍에 맞춰 산에 가는 것이 아니니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 황홀한 단풍은 상상에 맡기고 단풍이 가장 먼저 찾아올 천왕봉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천왕동릉의 칼날같은 능선에 서서 불타는 마야 깊은 계곡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란 여망을 한 가슴 품고서....        

 

 

   중산리 매표소에서 법계사 버스를 타고 경상남도 자연학습원 입구까지 간다. 이 버스는 법계사에서 신도들을 위해 운행하는데 칼바위 쪽으로 가는 것보다  산행 거리를 약간 단축할 수 있어 천왕봉 방향으로 가는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한다. 요금은 보시금 명목으로 일 인당 2천원씩 받는다.  자연학습원 입구에서 신발을 고쳐 매고 법계사 방향으로 오른다. 순두류계곡 진입로에서 조금 더 진행하여 법계사 올라가는 길과 갈라지며 천왕동릉으로 진입한다. 처음부터 산죽이 길을 막아서며 산길이 만만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천왕동릉은 중산리에서 법계사 천왕봉까지의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중산리길과 중봉 써래봉 국사봉을 흐르는 황금능선 사이의 길이가 짧은 능선이다. 말하자면 중봉으로 이어지는 순두류계곡의 왼편능선이 천왕동릉이다. 천왕남릉과 마찬가지로 전망이 좋지만 경사가 급하고 암릉이 많아 지리산꾼들만 찾는 곳이다. 

   1시간여 올라가니 능선에 조그만 돌무더기가 보인다. 돌 무덤으로 보인다. 험준한 천왕동릉에 돌로 무덤을 한 것으로 보아 평범한 사람의 무덤은 아닐 것이고 어느 빨치산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아래 순두류 계곡에는 빨치산 아지트가 있던 곳이니 그럴 개연성이 높은데, 이재구는 이런 형태의 돌무덤은 빨치산 출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빨치산 장교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어디에서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카탈루냐에서 죽고 싶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어느 때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별들만 노래하고 지상엔 모든 음향이 일제히 정지했을 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유언이 없느냐고 물으면, 나의 무덤에 꽃을 심지 말라고 부탁할 밖에 없다....."

 

  "스페인 내란 때 죽은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에 나오는 글이다.  이태의 「남부군」이나  이병주의 「지리산」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허망한 열정' 아니겠는가? 반세기 전 지리산을 무대로 허망한 열정을 불살랐던, 돌무덤조차 없이 사라진 원혼들이 능선과 계곡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땅에는 아직 온전히 그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다만 유보되고 있을 뿐이니 어쩌겠는가!     

 

   산은 점점 가팔라 지고  두 발이 아닌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난코스가 계속된다. 원래 트레킹에는 2개의 스틱이 있어야 좌우 균형도 유지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경우 하중의 30% 감소효과도 있어 무릎 보호도 되고 또 몸 한 쪽에 무리가 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데, 스틱을 오래 사용하다 보니 하나가 망가져 한 개만 가져왔다. 그런데 이런 암릉을 오르내리는 곳은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거나 할 수 있으니  한 개가 유용한 점도 있다.   

   조릿대가 키를 키운 좁은 능선을 따라 오를 수록 산의 사면(斜面)은 초록과 적갈색으로 어우러지며 가을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음을 알린다. 아래는 아직 불타기에는 이른 시기지만 고도를 높이니 붉은 기운은 점점이 하늘을 가리고 계곡을 적신다.      

 

   마가목 잎에도 가을이 묻었다.마가목은 높은 산에서 먼저 겨울을 준비하여 물들기 시작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데 껍질이나 잎도 약재로 쓰이고, 열매는 술에 담궈 마시면 혈압을 낮추는 효능이 좋다고 한다.  천왕남릉에 마가목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데 해걸이를 하는지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도토리 등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열매가 흉작일 때는 들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대신 들에 흉년이 들면 산 위의 나무들이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다고 하는데 구황식물(救荒植物)이 되는 것이다. 저거들끼리 무슨 연락방법이 있는지 온 산 열매가 다 해걸이인 걸 보면, 그런 속설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쨋든 산의 나무가 지 지슥새끼 밖에 모르는 인간들보다 나은 점이 있다. 

   고도를 올리니 황금능선, 치밭목능선 그리고 멀리 웅석봉 달뜨기능선이 가로 누웠다.  

   지난 태풍에 중봉과 써래봉 아래로 큰 상채기가 났다. 계곡으로 두 군데나 산사태 흔적이 역력하다. 거대한 구상나무의 허리가 꺾이고 뿌리가 뽑혀 넘어졌고, 나무들의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수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래도 계절은 가는 법이고 숲 속 일은 그런 것, 가을이 바람을 타고 내려온 마야계곡에는 가장 먼저 잎을 내린 자작나무들이 희끗멀끗 나신을 드러내고, 신갈나무 단풍나무 군락도 적갈색으로 옷을 바꾼다. 새가 울더니 때 아닌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동릉의 동굴

  이 동굴 속으로 쭉 들어가면 청학동이 나온다는데...    

   마야계곡(중봉골) 과 황금능선  

   전망대에 서니 왼편으로 S자형의 긴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써래봉에서 발원하여 국사봉으로 구곡산까지 이어지는 황금능선이다. 가을이면 조릿대숲이 석양을 받아 황금색으로 출렁인다고 하여 황금능선이라 한다.

   오른편 계곡이 광덕사골인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 기도했다는 법주굴과 광덕사지가 있는 계곡이다.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 기도했다는 기도터는 전국 여러 곳에 있는데, 후세에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고려의 신하였던 이성계가 전국을 돌며  왕이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것도, 위화도 회군 이후 실권을 잡고 나서 산골짜기를 찾아다녔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기에 그렇다. 이재구는 "졸따구들 보냈겠지" 한다.  2010.3.27 통신골로 올라 광덕사골로 내려 가며 법주굴과 광덕사지를 찾아 든 적이 있다.   

     천왕동봉

   천왕동릉길은  암벽이 길을 막고 잡목이 다리를 잡고 가지가 얼굴을 찌르는 등 난코스지만 군데군데 전망이 좋아 산행하기에 피곤하지는 않다.   

  12:30  천왕동봉 야영지에 도착 점심을 먹는다. 초입에서 4시간20분 걸렸다.

   천왕동봉 야영지는 지난 7.6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 야영했던 곳이다.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5분거리지만  야영지가 동릉 바위 뒤에 숨어있어 천왕봉에서는 보이지 않고, 주등산로에서도 입구가 눈에 잘 띄이지 않는 곳이다. 해서 이곳에서 야영을 많이 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지뢰밭이다. '숙영지에서 떠날 때, 발목지뢰는 묻어 뒤끝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라는 필드 매뉴얼을 숙지 않고 다니는 인간들 때문이다.

   점심시작 전 이재구는 지리산 산신령님께 법주로 술 잔 올리고, 전에 없이 지리산 원혼들에게도 "우짜든동 구천(九泉)을 떠돌지 말고 극락왕생 하시도록 기원"하며 한 잔을 더 올린다. 아마 빨치산 무덤을 보고 느낀 감정이 있었나 보다.

   법주, 오미자, 와송주, 캔맥주 네 가지 술을 비우고 나니 조금 모자란 듯하여 아쉽다. 다 먹는 재민데....먹었으니 피로도 풀 겸 그 자리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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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봉이 彼岸인줄 알고 왔더니 반야봉이 彼岸이구나  

   천왕봉 정상에서 증명사진을 찍는다. 토요일인지라 천왕봉에는 산객들로 인산인해다. 천왕샘 아래에서 천왕남릉으로 빠져 깊은골로 해서 중산리로 간다. 가뭄 탓인지 천왕샘에 물이 말랐다.  

   천왕남릉도 전망 하나는 빠지지 않는다. 

   천왕남릉의 왼쪽이 깊은골이고 오른쪽이 통신골이다. 그 아래는 유암폭포와 법천폭포가 있는 장터목에서 중산리 길이다. 

   지리의 바람에 사브작사브작 가을이 묻어와 어느새 숲으로 퍼져 나간다. 

   김영랑이 그랬던가! "오메 단풍들겠네!"

  

    오-메 단풍 들겠네
    장광은 골 붉은  감잎 날아와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 보며

    오-메 단풍 들겠네


    추석이 내일 모래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메 단풍 들겠네.

 

 

  천왕남릉에서 왼편 깊은골로 내려선다 

   태풍에 허리가 꺽인 구상나무

 

   山中雜談 :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

   여러 사람이 산에 다니면 무슨 쓸데 없는 소리라도 지껄이기 마련이다. 농담도 오가고 나무나 꽃, 지명의 유래나 그에 얽힌 이야기, 선인들의 유람록 등도 있다. 

   이번 산행에서 보니 올해 몇 차례의 태풍으로 산의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피해를 입었다. 쓰러진 나무에서 퀴퀴한 냄새도 난다. 박노욱의 나무해설이 시작된다.

 

   "염기훈, 이 나무 봐라"

   "이 나무는 마가목이다. 잎이 우떻고 저떻게 생겼고..."

   "이것은 구상나무다. 줄기가 우떻고..주목은...저떻고..." 

   "저 나무는 진달래고... 철쭉과 다른게 입이 먼저 나고 우떻고 저떻고..."

   그러면서 나더러 "뭣도 모르는 넘"이라고 공연히 시비를 건다.  

  

    박노욱은 아파트 11층 꼭대기에 살면서 아파트 1층 화단에 화분이며 꽃들을 가꾼다. 잘 가꾼다. 그래서 박노욱의 아파트 출입구는 화단은 각종 꽃나무들로 가득하고 계절따라 꽃들이 만발하다. 남들이 버린 꽃나무를 가져다 잘 살려 놓으면 슬그머니 도로 가져가기도 하고 또 쓸모없는 화분을 슬그머니 내 놓기도 한단다. 그래서 박노욱이 사는 아파트 1층 화단은  사철 푸른 정원이다.

 

   우리나라 산에는 나무가 많은 편이다. 그것도 젊고 싱싱한... 지리산만 하더라도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류 등이 대부분이고, 구상나무, 주목, 가문비나무, 서어나무, 철쭉, 개서어나무, 미역줄나무 등이 나머지 식생을 차지한다. 온난화 탓인지는 몰라도 지리산에 소나무는 적은 편이다. 백두대간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런 나무들은 숲을 울창하게 하고 산을 건강하게 하지만 목재로서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쓸모없는'이 잠시 이야기의 주제가 된다. 

 

   장자에 '쓸모없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목수 장석이 거대한 나무를 보고는 '쓸모없는 나무'라며 베지 않았다. 장석의 꿈에 그 나무가 나타나 "쓸모가 있다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라며 꾸짖는다.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쓸모없기를 바라 여태 살고 있는데, 너같은 쓸모없는 인간이 나를 쓸모없다고 하느냐"는 이바구다.

 

  내 말에 이재구는 '쓸모없는'에 관한 이야기라면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도 있고, 논어에 '원양' 이야기도 있다며 

 

  "공자의 친구 원양이 다리를 뻗고 앉아 공자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보시고, '어려서는 공손하지도 못하고, 커서는 칭찬받을 만한 일 하나 없고, 늙어서도 죽지도 않으니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며 지팡이로 정강이를 때렸다."고 줄줄 내뱉는다. 

 

  적시적소에 정확하게 Output이 되는 재구는 논어를 다 외우고 있는 모양이다. 

  산에서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다 '씰~데없는' 이야기까지 한다.  

     

 

 

   깊은골의 단풍

  나무들이 더 이상 생장을 포기하는 순간 엽록소가 피괴되고, 카로티노이드와 같은 노란 색소가 나오면 은행같은 노란 단풍이 들고, 안토시안과 같은 붉은 색소가 나오면 붉은 단풍이 든다고 한다. 기온이 낮아지면 식물체가 얼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해를 입을 만한 잎을 떨궈버린다고.  

   깊은골 하산하다 땀을 씻으니 계곡산행이 끝난다. 출렁다리에서 장터목산장에서 중산리간 등산로에 올라선다. 봄에 미스킴라일락꽃이 향기를 뿌리던 곳이다.   

 

   18:20 중산리에 도착했다. 천황동릉에서 보니 써래봉 능선이 아름답고, 그 아래 사면으로 자작나무 희끗멀끗한 풍경은 귀밑머리 물들어가는 여인을 보는 것처럼 마음을 푸근하게 적신다. 동부능선인 황금능선, 치밭목능선, 달뜨기능선은 마치 남쪽 큰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듯 산줄기를 뻗고 그 사이로 작은 강들을 이루어낸다. 천왕봉이 품은 암릉인 동릉과 남릉은 작지만 옹골차서 그 위에 서는 이에게 먼데 산을 내주고 그 아래 계곡을 보여준다. 

   가을꽃이 떠난 지리산이 핏빛 단풍으로 물들었다. 곧 다가올 겨울 지리 산정에 설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또 한번의 가을을 보낸다는 아쉬움이 앞선다.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지리산에 한 번 더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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