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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솔바람소리가 솨~하면 젊은 아낙은 조용히 귀 기울여 뱃속의 아기에게 자연의 소리를 태교로 들려주고, 아이가 태어나면 솔향기 진한 동네 언덕 천년송에 금줄을 친다는 와운臥雲마을은 구름도 누워서 흐른다고 누운골이라고 한다. 뱀사골입구인 반선에서 뱀사골 따라 30분 정도 걸어가다 좌측으로 와운마을 가는 길이 연결된다. 와운마을에는 이 마을의 전설로 남아있는 천년송이 있는데 할머니소나무와 할아버지소나무가 그것이다. 매년 정월 초사흘이면 기원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이 천년송을 보기 위해 일부러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도 많다. 요즘 대다수의 남자들이 여성들의 기세에 눌려 기를 못펴고 살듯 할머니소나무의 우람하고 잘 생긴 자태에 바로 위 할아버지소나무는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번 산행은 지리산 뱀사골입구인 반선에 차를 대고 와운마을에서 와운골을 타고올라 연하천산장으로 가서 점심을 하고 삼정능선을 타고 영원봉을 거쳐 다시 와운마을로 원점회귀하는 산행이다. 그런데 '삼정능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요?' 묻는 나의 질문에 "지리산의 수많은 종주코스(주능선, 태극, 화대 종주...)중 섬진강변 하동 악양의 외둔에서 시작해 형제봉 -삼신봉-영신봉-삼각고지-삼정산-실상사까지를 남북종주라고 부르는데, 삼각고지-실상사 구간 전체를 삼정능선이라 부르기도 하고 영원고개까지를 중북부능선 그 이후부터를 삼정능선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하는데 결국 연결된 하나의 능선이니"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라는 이재구의 설명이다. 연하천산장 위 명선봉에서 시작하여 영원봉을 거쳐 실상사까지 이어지는 삼정능선은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는 삼정산과 그 아래 천하길지라 하는 상무주암과 영원암 도솔암 등 을 거느린 지리산 북부지역의 큰 줄기 중 하나이다. 2010.6.5 7명이 구름도 누워서 지난다는 와운골 산길로 나섰다. 06:00 부산 출발
09:08 와운마을의 천년송, 왼쪽이 할머니, 오른쪽이 할아버지 소나무. 와운마을은 몇 가구가 산에 기대어 민박겸 식당도 하며 농사도 짓고 산다.
와운골은 구름도 누워 흐른다고 누운골이라고도 하는데 연하천산장의 샘물이 이 골짜기의 발원지가 된다. 이태의 '남부군'에는 명선봉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빨치산 몇 명을 뱀사골 환자 비트로 데려다 주라는 명령을 받고 안내원을 앞세워 뱀사골 비트를 찾아가다 길을 잃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마디로 배암사골이라 하지만 지리산 아흔아홉 골 중에서도 골이 길기로는 피아골 오십리 다음가는 긴 골짜기이다. 더구나 대낮에도 찾기 어려운 비트를 어두운 밤중에 찾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른편 지능선쪽으로 비슷비슷한 가지골짜기가 수없이 나타났다. 한 시간쯤 계곡을 따라 내려간 후부터는 길을 안다는 대원이 앞장서 그 가지 골짜기를 서너 곳이나 더듬어 올라갔다가는 내려왔다. "우리가 지리산을 함께 다닌지가 열댓번 쯤 될라나?" 이재구차장에게 물어보니 "그쯤까지도 되지 않을 성 싶다"고 한다. (나중 확인해 보니 13번째다) 지리산을 몇 번이나 다녀야 조금 안다고 할까? 한 오십번 백번? 지리산은 계절마다 다르고 아침저녁 그 모습을 달리한다. 개인적으로 다닌 것까지 한 서른번은 넘을성 싶은데도 아직 지리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나로서는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는 이재구가 경이롭기만 하다. 오십 번 쯤 다녀보면 지리산에 대해서 조금 알려나?
구슬바위취
푸른 숲 계곡 산길을 오르는 내내 여러 종류의 새소리가 들린다.
5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큰앵초. 초여름에 깊은 산 속 그늘에서 앵초와 비슷하고, 잎이 넓고 큰 풀을 볼 수 있는데, 바로 큰 앵초이다. 잎이 큰 앵초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돌이 희면 이끼가 어찌 그리 푸르며 물이 푸르면 꽃이 어찌 그리도 붉은가?" 계곡을 가로질러 넘어진 고목을 타고 이끼가 피어나고 그 위로 흐르는 물은 자연스레 폭포를 이룬다. 우연히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은 추억이 된다. 대성골과 뱀사골의 이끼폭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누운골의 작은 이끼폭포도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는다.
12:46 연하천 산장에 도착했다. 연하천 산장의 샘물은 와운계곡의 발원지다. 주능선 종주산행을 하는 산꾼들은 대게 벽소령이나 연하천에서 하룻밤을 묵어간다. 우리도 연하천 산장 인근에서 점심을 먹은 후 그 자리에 등을 대고 누워 30여분간 달콤한 오수를 즐겼다.
15:07 별바위등에서 본 벽소령 대피소. 벽소령 너머는 하동 화개의 의신마을이고 이쪽은 함양 마천이다.
유장한 지리산 능선. 삼정능선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넓고 깊다. 백두대간의 끝자락에서 펼쳐지는 그 깊은 품 속에 인간들은 옹기종기 또아리를 틀고, 지리산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 "지리산은 한반도에서 그 품이 가장 넓다. 예부터 쫓기는 온갖 생명들이 그 속으로 숨어든 어머니 산이었다. 우리 현대사의 마지막 무덤도 지리산이다. 남과 북, 좌와 우로 나뉘어 쫓고 쫓겼다. 숨으면 찾아내 끝내 죽였다. 정의, 진리, 이념 따위는 허상이었고 주검이 실상이었다. 시신이 골을 메웠다. 그래도 어머니 산은 계절을 불러오고 꽃을 피워 올렸다. 생명이 스러진 곳에서 생명이 태어났다. 지리산은 빨치산 아들과 토벌대 아들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어머니 산은 날마다 아팠을 것이다." 2010.6.8일자 모 신문의 칼럼 중 일부내용이다. 左나 右가 없는 한 쪽은 불구이기 마련이고, 死가 없는 生은 생지옥의 연속일런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역사와 함께하는 동안 그 속에 모든 생명들을 품어 주었지만 이병주의 대하소설 '지리산'이 대변하듯 현대사에서 좌와 우가 피를 토하고 생명들을 토벌하는 전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리산은 말 없이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과 같은 산이다.
영원암. 해인사 말사인 영원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영원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영원 스님은 부산 금정산 범어사 스님이었는데, 욕심 많아 구렁이로 변해 버린 스승을 다시 동자로 태어나게 해 제자로 삼은 뒤 기어코 깨달음을 얻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참선하는 스님네들의 용맹정진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정산이 품은 상무주암. 상무주암은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천하제일갑지로 불리는데 현기스님이 주석하고 계신다.
영원봉에서 본 삼정능선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심마니 능선. 옛날부터 반야봉에서 반선에 이르는 능선에는 약초와 산삼 등이 많이나 심마니능선이라 불렸다고 한다.
17:00 영원봉에서 천왕봉을 배경으로...
영원봉 조금아래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본 와운마을
만복대에서 정령치를 거쳐 바래봉으로 흐르는 유장한 지리산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고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 냄새를 늘어 놓고 복사꽃을 올려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김춘수 아무것도 아닌...꽃인 듯 나인듯....-_-;
18:00 와운마을 천년송. 작년 가을 어느 날 천년송을 보러 왔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찍은 사진이다. 그 전에 2번 와운마을에 와 본 적이 있는데 반선에서 뱀사골 골짜기를 따라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로 붐비는 여름철을 피해 봄가을에 반선지구에 차를 대고 뱀사골 골짜기를 산책하며 와운마을까지 다녀오는 것도 괜찮은 지리산 탐방이라고 생각된다. 겨울 많은 눈이 내리는 날 반선에 차를 대고 깊은 눈길을 걸어 겨울 천년송의 도도한 자태를 보러오마던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진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다가오는 겨울에는 꼭 ....
산에 사는 짐승일 지라도 가끔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기도 한다. 똘망한 눈을 가진 넘일 경우에는 더욱...
반선에서 와운마을 입구에 들어오는 요룡대 인근 빨치산들이 신문, 기관지 등을 발행하던 석실표지 '남부군'의 저자 이태가 빨치산에서 했던 일이 기관지를 만들거나 하루하루 있었던 것을 기록하는 것이었는데, 훗날 그는 그것을 바탕으로 기억을 더듬어 '남부군'을 썼고, 이병주는 이태의 '남부군'을 토대로 대하소설 '지리산'을 쓴 것 같다. 이 책들을 읽고 불과얼마 오래지 않았던 과거 지리산에서 벌어졌던 '죽은 자의 입술에 묻은 밥풀을 산 자가 떼어 먹는' 장면을 반추하며 이 땅에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함을 알았다. 요룡대입구의 빨치산 석실표지판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더해 오는 것이다. 7명이 지리산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노욱이 삼척에서 오고, 김택영이 서울에서 왔다. 1대의 차가 2대로 늘었지만 지리산은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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