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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모음

지리산 영원봉

by 하얀 사랑 2012. 1. 26.

 


  
○ 산행일시 : 1.14(토) 04:50  교대앞
   ○ 산행코스 : 반선 07:50- 와운마을(천년송) - 영원봉 [시산제] - 상무주암 - 삼정산 - 약수암
                      
 - 실상사 16:50
   ○ 산행인원 : 6명 (이재구, 한영택, 박노욱, 김택영, 송건주, 염기훈)   

     이번 산행은 2012년 시산제를 겸하여 첫 산행이다. 지리산에 함께 하지 못함을 늘 아쉬워하던 박노욱이 하루 휴가내어 서울에서 왔다. 시산제는 천왕봉을 비롯하여 주능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지내는 것이 의미있을 거라며 삼정산 인근 영원봉으로 자리를 정했다. 영원봉은 명선봉에서 북으로 삼정산과 실상사로 뻗어나가는 삼정능선의 중간쯤 위치하여 천왕봉과 반야봉, 만복대와 바래봉능선을 두루두루 조망할 수 있는 천하제일갑지 삼정산 바로 인근이다. 지리산 첫 산행에 대한 마음씀이 이와 같이 지극하다.


     뱀사골 초입의 반선에 도착하니 산중 날씨답게 싸늘하고 차가운 기운에 귓볼이 따갑다. 

     "지리산을 지키고 싶다. 케이블카를 허가하라" 

     뭔 생뚱맞은 소리인지 보니 지역주민들이 붙인 펼침막이다.  반선을 출발하여 와운으로 향한다. 산길은 잔설이 쌓여 군데군데 희끄머레 하다. 초입에 몇 개의 텐트가 눈에 띄어 누군가 야영을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반선에서 와운까지는 대략 30여분, 두툼한 장갑을 끼긴 했지만 손끝이 시리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누군가가 군데군데 나무에 글귀를 걸어 걷는 자의 마음에 울림을 준다. 그 중에 눈에 띄는 한 구절!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나
     
德이 있는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사방에 풍긴다.      - 법구경 -  
        
                   
                   

   와운마을의 천년송.

   와운마을에서 영원봉으로 오르는 능선 초입에는 두 그루의 천년송이 있는데 아래쪽의 할매소나무와 위쪽의 할배소나무가 그것이다. 할매소나무는 장정 네명이 팔을 둘러야 할만큼 둥치가 크고 (둘레가 6m)  그 위용이 와운마을 골짜기를 압도하고 있어 천년기념물 424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이 매년 정월 초사흘에 나무제사를 지낸다고 하는데, 그 위의 20m 떨어진 할배소나무는 무대접에 가까워 할매소나무에 비해 초라하기까지 하다.   

   전부터 가진 한가지 바램이 있었는데 눈을 이고 있는 천년송의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雪松圖를 상상하며 눈내린 와운골을 찾을 날이 있기를....     

  와운마을. 몇 가구가 민박도 치고 농사도 짓는다.  

 와운마을에서 영원봉까지는 2시간 반 가량. 영원봉 오르는 몇 개의 코스 중 가장 단코스로 비탈지기는 하지만 코스가 어렵지는 않다.  


   반야봉과 중봉이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낸다. 
   앞 능선은 와운마을에서 명선봉으로 이어지고, 다음 골짜기가 뱀사골, 그 다음 반야봉에서 흐르는 능선이 심마니능선이다. 뱀사골은 화개재에서 반선의 집단시설지구까지 12km로 수많은 沼와 폭포, 너럭바위로 유명하다. 지리산 마니아였던 고정희 시인이 1991년6월 우중임에도 계곡을 오르다 급류에 휘말려 죽은 곳이기도 한다. 사회운동도 했던 고시인은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시로 유명한데, '고백'이란 시도 있다.   

            너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기줄에

            나는

   
            감
            전
            되
            었
            다

  영원봉 전망바위

  영원봉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만복대 산줄기. 지리산의 위용을 잘 보여준다.  

  나목은 가지를 떨며 햇살 지나는 길목에 서고, 

  잔설은 양지에 몸을 누이고 그 햇살을 보듬는다.
  간밤 바람으로 둥지 잃은 새의 서러운 울음은 자취가 없고
  얼지 못해 흐르는 계곡에는 맑아 가슴 시린 물이

  더 낮은 길을 찾아 떠나는 산의 아침 
  달궁을 품고 와운골을 안은 지리의 겨울은

  감추려해도 절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裸身의 겨울지리  

  지금, 여기, 지리산 영원봉 능선


   영원봉에 도착하여 자리를 펴고 
천왕봉을 향해 시산제 제물을 진설한다.
   세가지 나물과 따끈한 탕국, 생선을 찌고 돼지머리를 눌려 썰어 정성을 다하고, 
   명태, 문어, 떡, 유과, 귤, 사과, 조율이시를 진설하고 향을 피워 술을 따르니 
   이만한 정성이 달리 있을 수 없다.   

   이대장이 써 온 축문을 경건하고도 낭낭하게 읽는다.  명문이다. 


 
           祝   文


    
壬辰年 정월 열나흗날,
     하늘과 맞닿은 지리산 장엄하게 바라보이는 영원봉에 올라 
     주인 없는 저 바람과 햇살을 듬뿍 안고 
     세상에 비길 바 없는 통쾌함을 갈무리하여
 
    神靈님께 엎드려 告합니다.


 
    백두산 흘러내려 지리산으로 솟구치고, 
     저기 눈 덮인 지리능선 굽이쳐 흐르는데,
     아, 이 아득한 天地間에 우리네 몸은 한알 좁쌀이라, 
     우리의 一生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山川의 끝없음을 부러워합니다. 
     그리하여 다함이 없는 저 宇宙의 기운을 즐기고 싶어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여기 모였습니다.


  
   지난 해에도 지리산 신령님 덕분으로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하였습니다. 
     오늘 저희가 壬辰年의 뜻깊은 첫 지리산행을 시작하면서 
     山神님께 한잔 술을 부어 올려 한해의 無事山行을 祈願하오니


     바라옵건대, 
     작은 정성이나마 거두어 주시고 
     올해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시로 산으로 들고 날 때 
     넉넉한 보살핌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비나이다.  

  삼정마을 양정 음정 하정마을이 있다.

  삼정산

  삼정산에서 바라보는 반야봉

   상무주암


   
사진촬영 금지 
   스님이 되는 목적은 자기 인생 걸고 깨닫는데 있다. 중생제도는 뒷일이다. 자기 똥 일단 치워놓아야 남의 똥도 눈에 들어오는 법. 상무주암의 현기스님이나 선방에 들어앉은 스님들이 그런 경우다. 현기스님은 상무주암에 혼자 수행하며 한사코 외부인들이 들끓는 것을 거부한다. 본인은 일대사를 대오각성에 걸었는데 첩첩산중까지 찾아와서 방해하는 사람들이 싫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몰래 들어가서 사진을 찍거나 또는 스님을 뵙기를 청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나같이 초파일 천원짜리 몇 장 시주함에 넣고 비빔밥 얻어먹고 오는 중생들이 뭔 복받을 일 찾는 것이다.  


   보조국사 지눌과 제자 혜심 그 제자 각운 그리고
 「筆端舍利塔」
   상무주암은 기록에는 고려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선국사(신라말~고려초)가 이곳을 발견하고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위낙 명당이고 수행하기 좋은 곳이다 보니 보조국사 이전에도 수행자는 있었을 법 했기에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모양이다. 


  
통일신라 전반기에는 당에서 융성했던 법상, 유식, 화엄, 밀교가 전래되었는데, 禪宗은 신라말기 당나라에 유학한 道義국사(821년)를 통하여 처음 들어왔고, 이후 실상사를 시작으로 구산선문이 세워지는 등 본격적으로 禪의 바람이 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로 禪과 敎가 자주 대립하게 되었는데, 고려 때 지눌스님이 정혜쌍수定慧雙修(즉,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는 함께 닦아야 한다며)로 교통정리를 하여 오늘날 조계종의 사실상의 원조로 추앙받게 된다.   


  지눌스님의 제자 중  혜심(慧諶)이라고 있어 佛祖 석가모니로부터 그당시까지의 공안(화두)을 망라하여 ≪선문염송≫으로 정리하였으니, 이는 세계 선불교 사상 최고 최대의 공안집으로, 조사선의 정통을 이엇다는 한국 불교의 자부심이다. 스님의 제자 각운(覺雲)이 스승의 저술을 해설하고 주석을 달았으니 ≪염송설화≫이다. 편찬을 끝내고 붓을 놓으니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는데, 그 사리를 봉안한 탑이 상무주암 돌담가에 서 있는 3층석탑으로 「筆端舍利塔」이라 한다. 이것 역시 유래가 없는 이야기이다.  


 
   각운스님의 지극한 마음과 뜻이 통한 붓이 사리를 맹그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집 게으른 CD는 제 혼자 독경하다 언제쯤 사리를 품을 수 있을라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목조탱화
   삼정산에서 하산하여 긴 솔숲을 지나니 약수암이 나타난다. 약수암은 목각아미타여래법상으로 유명한데 대개 탱화는 천이나 종이에 그린 그림인데 비해 약수암 탱화는 나무로 조성되어 신비함을 더한다.  주존불은 아미타불이고 협시보살은 제자들과 관세음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 등이니 서방정토를 관장하는 극락세계를 염원하는 중생들의 마음을 간절하게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약수암의 목각탱화는 카피본이고 원본( 보물 421호, 1782년(정조 6년)) 은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실상사 3층석탑. 우리나라 탑은 대개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있는 것이 없는데 실상사 삼층탑이 유일하다고 한다.  

  목탑이 서 있던 자리라고 하는데, 목탑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그 자세한 구조는 알 길이 없으나 자연석을 이용한 주춧돌의 크기와 넓이 등을 보면 매우 거대한 목탑이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상사는 절집을 천왕봉을 마주보게 세웠다. 천왕봉 너머 동쪽에는 남명 조식의 산천재가 자리하고 있으니 우리 조상들의 지리산 사랑도 각별하다.    
 
    

   실상사 약사전의 철불은 좌대 없이 맨땅에 앉아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얘기가 전한다.

   철불과 천왕봉의 선을 연장하면 일본 후지산에 일직선으로 닿는데, 실상사 자리는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의 지세가 모이는 곳이라 거기에 철불이 앉아 일본의 氣를 누르고 있다고. 그래서 엉덩이를 한시도 땅에서 뗄 수 없다고….

   
아마 원래 불상의 좌대는 건물이 불타는 바람에 같이 무너졌고, 육중한 철불을 다시 좌대를 만들어 올릴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대로 두다 보니 민간의 바램과 애환이 어우러진 전설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어, 그런데 약사전을 보수한다고 임시 받침대를 만들어 철불을 올려놓았으니, 일본의 氣가 Up될까봐 걱정 아닌 걱정이다.

 

   2012년 시산제 산행에는 숲과 능선과 계곡과 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간 흔적이 있고, 전설과 이바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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