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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모음

지리산 종석대(2012/2/4)

by 하얀 사랑 2012. 2. 14.

지리산 종석대
[염기훈 2012/02/09 08:42 / 조회수:596 / 추천:8]

 ○ 날      짜 :  2. 4(토 立春)  04:30 교대앞 
 
○ 산행인원 : 4명 (이재구, 김택영, 한영택, 염기훈)
 
○ 산행코스 : 화엄사 07:25 - 차일봉능선 - 우번암(점심) - 종석대 - 무넹기 - 형제봉능선 -
                     구층암 - 화엄사 17:30

 

   지리산을 몇년째 다니고 있지만 좋은 설경을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지않다. 눈오는 날에 맞춰 산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서 2년전 겨울 종석대를 찾았을 때 맛 본 멋진 설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가자. 그때는 출발이 좀 늦었고, 경치에 취해 너무 여유를 부리다 시간에 쫒겨 화엄사의 보물들을 둘러보지도 못하고… 그래서 이번에는 출발시간은 앞당기고 화엄사에서 차일봉 능선으로 올라 종석대의 설경을 느끼고 하산은 노고단 아래로 해서 형제봉 능선을 거쳐 화엄사로 원점회귀 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항상 그렇지만 길이 먼 만큼 산행 전날은 조신하게 몸단속 하고 금주는 필수

 

 

 

   4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과 효대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의 새벽 07:25 화엄사에 도착, 잠시

  각황전과 대웅전 앞마당을 서성이다 바로 4사자삼층석탑이

  있는 각황전 뒤로 오른다.

 

     4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과 석등을 이고 있는 스님이

   찻잔을 들고 공양하는 모습이다. 이곳을 효대라고 부른다.

  신라 자장율사가 선덕여왕14년(645년) 부처님 진신사리 73

  과를 봉안하고 세웠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화엄사를 창건

  한 연기조사가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상이라 하는데, 바로

  앞의 4사자삼층석탑의 탑신 중앙에 4사자와 함께 탑을 이고

  있는 스님모습의 석상을 마주보고 있다. 

  

    당초 석등에 눈을 잔뜩 인 공양상을 기대했으나 산 아래는

  눈 자취도 없어 아쉬움만 잔득 짊어지고 산길을 오른다.      

 

 

   사사자석탑에서 바로 원사봉~차일봉 능선으로 붙는다. 길이 가파르지만 능선에 능선 초입의 집단시설지구에서 오르는 것보다  20~30분은 단축할 수 있다. 능선에 도착하니 8.25분, 1시간 걸렸다. 원사봉 조금 지난 지점이다. 여기서 우번암까지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하늘에는 그런대로  구름도 별로 없고 능선에는 바람도 잔잔하다. 산길도 좋아 산행하기에 편안하다.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눈길을 밟으니 조릿대 숲에 싸락싸락 싸락눈 내리듯 소리가 맑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가는 임도따라 한참 올라오다보면 화엄사 내려가는 코재(무냉이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종석대 아래 우번암가는 샛길이 나 있다. 지난 여름 우번암 법종스님이 사람을 시켜 좁은 샛길의 산죽을 벌초하고 나서 길이 조금 넓어졌다.  차일봉 능선에서 올라오면 이 샛길 중간이 나온다.      

   11:30분 우번암

   "스님 계십니까?" 

   "누구시오?"

   "등산객입니다."

   법종스님이 문을 열고 나온다.

   "2년전 겨울 저 아래채에서 점심을 먹고 간 적이 있고 작년 여름에도 한번 와서 저 물버들 아래에 서서 스님과 말씀을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러고 보니 안면이 있는 것 같구만"

  "여기까지 온 김에 부처님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저 아래채에서 점심 좀 먹고 가도 되겠습니까?"

  "뭐 부처님께 인사까지...그럼 아래채에 불 넣어 드릴테니..." 

   우번암 물버들 아래 샘에는 맑은 물이 가득하여 이 곳이 수행터로 최적지임을 알려준다.     

   한 바가지 들이키니 물맛도 좋다.

 

    조촐한 법당에 들어가 삼배올리고 아랫채에 들어가니 방은 냉골이다.  스님이 전기판넬에 불을 넣었지만 금방 데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산꼭대기 찬바람 씽씽 부는 야외에서 먹는 것 보다 얼마나 호사스런 일인가!  법종스님은 산중에 수행하시는 분 중에서 제일 화끈하신 것 같다. 이런 산중 암자에는 귀한 것이 부식이다. 이대장이 김을 가져와 스님께 드리고 온다. 

    아랫채에는 관세음보살 한 분이 모셔져 있다. 

    이대장은 법주를 바나에 데우더니 

    "드릴 것은 없고..."  

    관세음보살님께 한 잔 올리고 넙죽 절하고 술은 제입에 털어 넣는다.

    법주, 오미자, 매실주, 소주... 술잔이 돌고 육고기가 입으로 들어가는 불경을 저질러도 관세음보살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저 넘들 하는 짓이....쯧쯧..."   하셨을라나~         
    

  스님께 인사하고 종석대로 향한다. 몸보다 마음이 저만치 앞서나간다

   우번조사가 상선암에서 수도하던 어느 봄날 여인이 나타나 유혹했는데, 그 여인의 뒤를 따라나섰다가 차일봉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관음보살이 나타나 우번을 보고 있었다. 이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참회하니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우번암 자리에 토굴을 파고 수도하여 후일 도승이 되었다고 하는데, 관음보살이 현신하여 서 있던 자리를 [관음대]라 하고, 여러 조사들이 우번대에서 수도하여 도통성불하게 될 때마다 은은한 석종소리가 들린다고 하여 [종석대] 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하는데.....

   저기 선 분은 혹시 관음보살?????

   惑者가 그랬던가!  흰색은 더 이상 덜어낼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색이라고. 그것에서 아무리 덜어내도 그대로이며 반대로 아무리 색을 더해도 더 이상 짙어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순백의 능선길은 덜 수도 뺄 수도 없는 대자연이 빗어내는 예술 그 자체이다.      

 

 

 

 

    설경에 취해 걸어온 길이 금방인듯 했는데  우번암에서 종석대 정상까지 한 시간 걸렸다. 

   산길을 가는 것은 알지 못하는 자연을 만나고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과의 어울림이며 교감이다. 산길에 서면 능선의 바람을 상상할 수 있고, 그 바람에 고개 숙인 키작은 들풀의 미소를 떠올릴 수 있다.  산길에서 만나는 감동은 어제와 오늘의 것이 다르고 지금과 나중의 것이 달라도 빈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 길을 만들고 내면을 바꾼다. 외운 것은 잊어버리지만 느낀 것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종석대   

     화엄사에서 계곡을 타고 노고단으로 올라오면 임도와 만나는 곳이다. 코재라고도 하는데 「무넹기」란 이름은 전라도 지방 방언이다.  1939년 심한 가뭄이 닥쳤을 때 구례주민들은 노고단 샘에서 발원, 남원을 거쳐 경남으로 흐르던 물줄기를 남쪽의 마산천으로 돌리기 위해 해발 1,300m의 높고 험한 곳에 길이 80m의 보를 쌓았다. 물길을 넘겼다고 해서 「무넹기」로 불리는 이 보는 요즘도 봄철만 되면 많은 주민들이 올라가 손질을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유일한 물길이 되겠다.  

    이곳에서 우번암 법종스님을 반갑게 다시 만났다. 산 아래 내려가시는 모양이다.

  노고단 산장 방향으로

  노고단 송신소 아래에서 형제봉 능선으로 들어선다.

 

   종석대와 노고단

   노고단 좌측 kbs송신소 아래에서 구례군 토지면 용두리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형제봉 능선이 하산길이다. 노고단에 시작하는 왕시루봉 능선과 더불어 섬진강에 맞닿는 긴 능선이다. 하산길이 왕시루봉 능선보다 쉽지는 않은 듯 하다.     

  능선 우측으로 빠져 화엄사 골짜기로 내려서니 계곡 옆으로 청계암이 먼저 나타난다. 깨끗하고 단아한 절집인데 문이 굳게 닫혀있고 인적도 없다. 조금 더 내려오니 화엄사 뒤 계곡이다. 신발과 스틱을 씻고 건너편 길상암와 구층암에 들렀다. 길상암 앞 들매화나무는 오늘이 입춘대길이라며 꽃피울 날만 손꼽고 있고, 구층암 3층석탑은 금당과의 배치에 어긋나고 또 연륜에 맞게 많이 삭아 있다......................
 
  

   화엄사 구층암

   화엄사 본 절에서 약 200m 북쪽 산길에 있다. 구층암은 모과나무를 잘라서 Y자형으로 갈라진 나무형태를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하여 건축의 자유분망함을 잘 보여 주는데, (이 건물의 뒷편, 사진을 몬 찍었음)  3층석탑이 앉은 방향으로 보아 현재의 건물은 후대에 앉힌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3층석탑도 쌍탑이었던 것이 탑 1기는 무너져 내려 담장 한켠에 부재가 나뒹구는가 하면 몇몇 부재는 계단돌의 일부가 되어 제 역할을 바꾸었다. 9층암이란 9층의 탑이 있었다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인데 석탑인지 목탑인지 사료가 없으니 고증할 길은 없다.  

  

    화엄사 각황전

    화엄사는 지리산 지맥인 원사봉과 형제봉 사이의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화엄사는 백제성왕 22년(544년)에 인도스님인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사진의 각황전[국보 제67호]은 의상대사가 670년 장육전을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고 나서 1699~1702년 계파선사가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중건이전에는 건물 내벽은 石經[돌로된 경전]으로 조성되어 스님들을 교육하는 강당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중건하면서 지금과 같은 예불공간으로 바뀌었다.  

    화엄사에는 대웅전과 각황전 2개의 중심이 있어 매우 이례적인 가람배치를 띄고 있는데  이름과는 다르게 대웅전에는 화엄사찰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원래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모신다.

   우리나라의 절집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을 더 아름답게 하는 묘미가 있다.  건축을 위하여 자연의 틀을 변형하지 않는 안목, 산과 절집의 어우러짐, 자연을 그 窓 안으로 끌어들이는 예술적 감각, 이런 탁월한 심미안을 가진 분들이 우리 조상이다.

    화엄사는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건축물과 석탑 등 국보와 보물 등의 문화재가 숱하게 산재해 있다. 얼마전까지 절집불사에 여념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 웅장한 틀이 거의 잡힌 것 같다. 
 

    이재구는 절집을 조금 알려면 며칠을 절집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거리거나 빈둥거려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스님, 여기 며칠 멍하니 있을 방법 없을까요?" 

    "그럼 여기 템플스테이 하소"

    "아, 예"

     뭐 그러고는 해인사에서 템플스테이 몇 번 했는데 많이 좋더라나 .....   

                     

    차일혁총경 공적비

 
    6
·25 당시 화엄사를 지킨 전투경찰대장 차일혁 총경. 빨치산 은신처인 화엄사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고, 문짝을 뜯어내 태우는 것으로 명령을 대신했다.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었다. "전각문짝을 태운 것도 절을 태운 것이니 명령을 따른 것이다."  

    차일혁 총경은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938~1943년까지 조선의용군에서 항일유격전을 펼쳤다고 한다. 귀국 후  경찰에 특채되어 빨치산 토벌대장으로 복무했다. 그의 시 '이 땅의 평화를 기원하며'에는 남과 북의 전쟁을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에 끼인 부질없는 골육상잔이라고 했다. 빗점골에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된 후 그의 시신을 화장하여 예우해 주기도 했는데 그런 영향 때문인지 전란이 끝난 후에 승진을 하지 못하고 38세에 요절했다. 

    공적비가 몇 년전(1998년)에 세워졌다는 이야기에  찾아다니다 물어보니 화엄사 진입로 부도탑군 건너 '詩의 동산'에 있다고 한다. 고은시인이 글을 지었다. 화엄사 경내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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