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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4.7(토) 04:30 교대앞 보름전에 이대장이 『서산대사 유적지 복원·정비 계획 : 하동군』, 『지리산 화개동천 바위에 새겨진 암호문자의 비밀, 서산 조선을 뒤엎으려 하다 : 손병욱』등 2권의 책을 보내왔는데, 하동군에서 지리산 둘레길처럼 쌍계사-신흥사-의신사-칠불사 및 단천마을-삼신봉 등 옛길과 서산대사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유적과 옛길을 복원하기 위한 용역보고서와 그 책임교수의 저서다. 쭉 읽어보니 옛길 복원에 대한 기본 구상은 마친 것 같다.
이번 산행은 옛 사람들의 유람록에 많이 등장하지만 지금은 기억에서 사라진 의신사와 칠불사간 고갯길인 당재와 의신사와 신흥사 간 옛길을 찾아보고 途中의 잘 모르고 있던 연암蓮庵, 정유석停留石, 檀川의 刻字바위 등 옛사람의 자취와 풍경을 둘러보는, 말하자면 지리산 산행 겸 옛길 유람이다. 금상첨화라고 4월이 섬진강 벚꽃이 아름다운 계절 아닌가?
"안당재는 옛사람들이 의신마을과 범왕마을, 의신사와 칠불사를 넘나들던 고개이며, 의신~신흥 옛길은 서산대사가 의신사와 신흥사, 내은적암을 오갔던 길이며, 의신 주민들이 화개장으로 오가며 세상과 소통하던 길이었습니다. 쉬엄쉬엄 걷기도 좋고 물가에 앉아 쉬기도 좋은 길입니다." 이대장의 말이다.
평사리 무딤이들판과 섬진강 사이 벚꽃길. ........ "꽃잎의 색이 바래 미닫이 창호까지 은은히 붉게 물든다는 표현에서 시인의 섬세한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졌구나"하고 공감했다고... 산행 들머리인 신흥삼거리 07:35 水流花開! 물흐르고 꽃 아름다운 화개골은 그 역사의 이력도 깊고 풍부하다. 이 부근에만 해도 신라 때 고운 최치원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三神洞』刻字가 있고, 그가 꼿은 지팡이가 신흥초등학교 왕성분교 앞에 지금은 푸조나무 고목이 되어 살고 있고, 벼슬길에 나오라는 왕의 말을 전해듣고 귀를 씻었다는 洗耳嵒 刻字도 있다. 또한 조선 후기까지도 있었다는 신흥사(지금의 신흥초등학교 왕성분교자리)와 서산대사가 세웠다는 홍류교와 능파각의 흔적(차량 뒷편) 그리고 서산대사가 수행한 내은적암 터(왕성분교 뒷편 언덕)가 있다. 신흥삼거리에서 범왕능선으로 진입했다. 능선이 가파르다. 범왕능선에서 본 단천마을. 들머리 입구가 좁은 마을이라 마음먹고 들어가 보지 않으면 눈에 띄이지 않는 동네다.
범왕능선 여기저기에 생강나무꽃이 꽃잎을 내밀고 있다. 봄 산에 다른 꽃들이 미처 기지개를 켜기 전 잎도 없는 나무에 노란 꽃이 가장 먼저 올라오는데 바로 생강나무꽃이다. 꽃이 산수유와 비슷하여 착각하기 쉬우나 나무가지를 씹어보면 생강냄새가 약간 난다.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 한다는데 풋계집애 점순이가 짝사랑하는 동네 머슴애를 괴롭히다 알싸한 향기나는 동백꽃 아래에서 함께 엎어졌다는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의 '노란 동백꽃'이 바로 이 생강나무꽃이다.
당재의 고로쇠 수액 채취모습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과에 속하는데 단풍나무의 사촌쯤 되는 것 같다. 뼈에 좋다고 하여 骨好水 또는 骨利水라는 말에 그 어원이 있다고 하는데 시원하고 맛이 달짝지근하여 마시기 좋다. 단풍나무잎은 8~11로 갈라지는데 비해 고로쇠잎은 5~7개라 한다. 한 말통에 5만원 정도에 팔리니 산골 농가의 겨울철 주된 수입원 중 하나인 것 같다. 『 조화로운 삶』의 저자 헬렌 니어링은 미국 버몬트 숲에서 시골살이의 주요 수입원으로 당단풍나무의 수액을 채취하여 시럽으로 만들어 판다는 내용이 있던데 문화 "차이인지는 몰라도 수액의 음용방법이 좀 다른 것같다. 단풍나무에서도 수액을 채취하기도 하는데 고로쇠 보다는 훨씬 못하다고....
당재에서 내려와 삼정마을에서 본 당재, 의신마을 사람들이 칠불사가 있더 범왕마을로 넘던 곳이다. 벽소령 옆의 직치(바른재)와 당재 그리고 바깥당재와 일직선을 이룬다. 과거에 의신사와 칠불사 그리고 피아골의 연곡사가 당재, 바깥당재로 넘어다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쿵쿵沼 연암 토굴 터 2011.12.31 주지 도현스님이 출타 중 원인을 모르는 화재로 불탔다고 한다. 불타기 이전 소담스런 연암토굴
도현스님은 2010년 1월 ‘조용한 행복’(뜰 출판)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책 '조용한 행복'을 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서 나무에 종이로 글을 적어두었다. "모든 것은 제행무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이 터가 말해 주고 있으니 주변의 산들을 바라보고 위안을 받으시라." "복원은 인연에 따르겠다"는 스님의 글귀가 마음에 울림을 준다. 연암토굴을 바로 지나니 의신마을 바로 뒤가 나타난다.
의신사지로 추정되는 곳 의신사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인 남효온이 1487.10.2 지리산 유람 중 천왕봉 영신봉을 거쳐 의신사로 내려와 당재를 넘어 칠불사로 갔는데 의신사 풍경에 대해 그의 지리산 유람록에 기록한 것이다. 미루어 보건대 의신사는 매우 아름다운 절이었고 스님들 또한 儒子들에 비해 손색이 없었으련만 지금은 폐사가 된 절터로 황량하게 남았고, 남효온이 말한 울창한 대숲만 무상한 세월 앞에도 소리를 품어 옛 이야기를 이어오고 있다.
의신옛길 의신옛길은 계곡을 따라 걷는 재미가 있어 더러 벼랑 위에서 쉬거나 계곡에 내려가 발을 담그거나 머리를 물 속으로 디밀 수도 있다. 유몽인의 유람기에는 이 계곡에서 "비파로 영산회상, 보허사를 연주하고, 범패로 그에 맞춰 춤을 추고, 징과 북소리가 어우러져 평생 관현악을 들어보지 못한 산 속의 승려들이 모두 모여들어 돋움발로 구경하며 음악을 듣고서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고 기록하여 옛사람들은 지리산 유람도 신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의신마을 도로에서 출렁다리로 계곡을 건너 계곡따라 위로 산길이 나 있는데 묵어 없어진 곳도 있다. 중간에 돌담이 아름다운 외딴 집이 한 채 있고, 조금 더 내려가면 정유석 신흥마을까지 6km 약 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앞 계곡에 웬만큼 물이 흐르면 도로 저편에서 건너오기도 어려운 곳에 돌담이 아름다운 외딴집이 있다. 주인장은 농사철에만 사는지 빈 집이 고요하다. 와운산방(臥雲山房) 장석남 그 집은 아침이 지천이요 나는 큰 부자가 되길 원했으므로 그 부잣집에 홀로 산다 쓰고도 쓰고도 남고 남아 밀려내리는 고요엔 어깨마저 시리다 바람만 찾아드는 그 빈집 앞에 청매가 향기를 실어 보내니 마다할 수 없는 나그네가 찾아들었다. 정유석(停留石) 일경일위유수지 一經一緯有誰知 날줄이 하나이면 씨줄도 하나임을 뉘 있어 알리오 날줄과 씨줄은 쌍계사 진감선사와 최치원을 이르는 말인데 서산대사가 1549년 봄 쌍계사 중창기에 '일경일위'라는 말을 썼다고 한다. 베라는 것이 씨줄 날줄 하나하나 모여 된 것이니 결국 인드라망의 세계를 말함이다. 이 세상이 그물코같이 엮겨 있고 그런 것은 자연의 이치니 씨줄날줄 모두 그 역할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성자심지리 性者心之理 性은 마음의 주재자요 이 글 또한 명필인데 누구 글씨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옆에 김석곤과 같이 간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추정된다. (모두 간재 전우의 문하인) 정유석 바위 언덕에 핀 히어리. 지리산 일대에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정유석에서 조금 더 내려가와 신흥교 인근 맑은 물가에 앉아 발을 씻고 15:30 산행 종료 ------------------------------------------------------------------------------------------- 암호문자의 비밀 『 암호문자인 새김글자(刻字) 네 자는 한자이름 ‘崔興命’에서 나왔으며, ‘최흥명’은 서산대사를 가리키는 비밀 이름이었으며, ‘최치원-청허당-최흥명’이 상호 연관되어 있고, 암호문자 바위의 위치 및 지리산의 관련성은 단군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며, 암호문자는 주역의 괘(卦)의 원리에 따라 암호화되었으며, 그 풀이는 암호문자의 주인공이 역성혁명을 도모할 것임을 나타내고, 역성혁명을 위한 준비로서 당시 당취(黨聚-땡추-땡초) 조직으로 볼 수 있는 승병을 조직·관리하였고, 이는 임진왜란 시에 그가 승병장으로 활약하게 된 기반이 되었으며, 정여립의 난, 허균, 양사언 등과의 관련성 및 역성혁명의 비전을 알게 되었으며, 서산대사는 단순한 선승이 아니라 자기 시대의 단군으로 자처한 당취 계열의 신불승(神佛僧)이었다.』 라는 것이다. 주장의 사실여부를 떠나 그런 암호문자가 실제로 있느냐 확인해 보는 의미에서 차를 타고 다시 단천마을 입구 계곡에 있는 암호바위를 찾아간다.
글자는 4자로 全,崔,(興天),命인데 全자를 파자하면 人+王, 崔자를 파자하면 仙+王, '興天'은 요상하게 두 字를 한 글자처럼 새겨놓았다는 주장이다. 물론 崔자도 조금 요상하다. 人王仙王興天命 사람의 왕이자 신선의 왕(즉, 단군을 지칭한다고 주장)이 '하늘의 명을 일으킨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여기까지는 그럴듯한 해석으로 보이고.... 그런데 崔興命을 서산대사의 당호인 淸虛堂과 34획으로 획수가 같다는 이유와 기타 등등의 추리로 곧 서산대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刻字의 새김을 보건대 우선 새긴 연대가 서산대사가 화개동에서 수행하던 15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같아 보이고 않고, 글자 크기도 고르지 못하고, 글씨체도 위 정유석에 새겨진 글씨와 비교하면 시골 學童의 수준을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의미를 부여할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닌 것같다. 『서산, 조선을 뒤엎으려 하다』의 저자(손병욱 교수)는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은거하는 당취(땡초)의 무리를 모아 역성혁명을 꿈꾼 것으로 줄거리를 풀어가지만.. 그것을 서산대사로 해석한 것은 견강부회한 짓이다. 이번 산행은 범왕능선과 옛사람들이 다니던 의신마을과 범왕마을 사이 당재를 거쳐 의신옛길을 답사했다. 자동차로는 옛길 옆도로따라 자주 지나다녔지만 계곡 건너 그런 길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용역보고서를 읽어보고 옛길도 걸어보니 다행히 자치단체에서 여러 옛길과 서산대사 관련 유적을 복원해야 겠다는 뜻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정된 총 사업비가 162억원, 그 중 옛길 복원사업에만 64억원이란 엄청난 돈이 투입되어야 하는 관계로 공무원 월급이나 겨우 줄 수 있는 시골 지자체에서 과연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도로개설하는데 수 십억씩 돈 쓰는 것보다 거창하지 않게라도 곳곳의 사연이 서려있는 옛길을 정비하고 , 길위 바위 하나하나에도 전망바위· 복바위·기도바위·돼지바위·범바위 등 이름을 붙이고 스토리텔링을 만들면 이것이 곧 문화유산의 현대적 해석이고 관광객을 유치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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