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모음

지리산 왼골(범왕능선)

by 하얀 사랑 2012. 5. 15.

지리산 왼골과 범왕능선의 봄
[염기훈 2012/05/11 17:01 / 조회수:384 / 추천:4]

산행일자 : 2012.5.5(토)
산행코스 : 삼정마을~빗점골합수내~왼골~토끼봉~범왕능선~당재~삼정마을
산행인원 : 5명 (이재구, 박노욱, 송건주, 한영택, 염기훈)

    이번 산행은 2.16부터 4.30까지 봄철 산불예방을 위해 통제되었던 주능선 구간에 갈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삼정마을에서 빗점골합수내에 붉게 물든 수달래를 보고 왼골로 해서 토끼봉으로 오르는 것이다. 토끼봉에서 범왕능선으로 당재까지 내려오면 4월 산행으로 신흥마을에서 당재까지 왔던 절반의 범왕능선 산행을 완성하는 것이 된다. 삼정마을 아래에 차를 대고 빗점골로 향하니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산중인지라 이제 막 연초록으로 물든 지리산 자락은 신록의 5월답게 맑다. 지리산 계곡들이 저마다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듯이 주능선의 토끼봉에서 발원되는 왼골에도 뭔가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산길을 나섰다. 

   큰 산을 점점이 물들이던 산벚꽃은 꽃잎을 다 날려 자취를 지웠고, 봄을 맞은 계곡 물소리는 우렁차고 시원하다.  산비둘기 꾸우꾹~ 우는 숲속에 보랏빛과 노랗고 흰꽃을 피우는 제비꽃들이 저마다 고개를 내밀었고, 병꽃나무며 쥐똥나무도 봄맞이로 꽃을 피웠다. 크고 작은 沼에 비친 수달래가 여인의 입술처럼 붉은 아침,  빗점골 합수내 가는 길목에는 산꾼들이 산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산천이 계절의 바뀜과 오고 가는 사람을 즐기는 듯 하다.

   無情說法이란 말이 있다. 사람이 아니라 산하대지의 온갖 만물이 설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선종의 조동종을 창시한 동산양개(807-869)스님이 물을 건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 모습을 보고 무정설법의 뜻을 깨닫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게송을 지었다. " 대단히 기이하고 대단히 기이하구나! 무정의 설법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말로 표현 못하니 만약 귀로 들으려면 알아차릴 수 없고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알 수 있다네!"       

   눈으로 듣는 산천의 설법!  5월의 지리산하는 그렇게 물들고 있다.    

 

  

  빗점골 합수내 수달래 (2011.5.13 촬영)       

   빗점골 합수내
   일 년전 5월 지리산행시 빗점골 합수내에 처음 왔을 때 합수내를 붉게 물들이던 수달래는 흔적조차 없어졌다. 지난해 여름 큰 비에 합수내의 수달래도 휩쓸린 결과다. 합수내 계곡은 남부군총사령관 이현상이 사살되고 사실상 지리산빨치산 활동이 끝난 곳이다. 그 역사의 현장을 지키던 붉은 수달래마저 세월 속으로 쓸려가고 없으니 합수내 계곡을 보는 느낌마저 밋밋해지고 무상하다.

   왼골  
   합수내에서 왼쪽골짜기로 올라가니 왼골이란 이름이 붙은 모양인데 토끼봉으로 연결되는 계곡이다. 가운데 골짜기가 총각샘으로 올라가는 산태골이고 오른쪽이 연하천산장과 연결되는 절골이다. 합수내를 지나  "지리산 계곡마다 숨어있는 비경이 많지만 왼골도 만만치 않다"며 "기대해도 좋다"며 이대장이 훌쩍 앞서나간다.     

   백작약 
   백작약 한 그루가 꽃대를 올려 꽃을 피웠다. 그 꽃 속으로 축하차 방문한 손님들이 분주하다. 앞서 간 사람들이 못보고 놓친 넘인데 송건주가 발견했다. 작약은 보통 5~6월에 꽃을 피운다고 하며 나도 산에 다니다 처음 보는 넘이다. 산작약은 붉은 꽃을 피우는대 비해 백작약은 흰꽃을 피운다. 뿌리를 약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며칠전 TV에서 아리조나 페트리 파이드우드 나무화석에 대해 방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지리산에서도 나무화석을 보았다. 경북 칠곡 촌구석에서 나고 자라 나무에 일가견이 있는 박노욱이 나에게 이것봐라며 알려주는데 자세히 보니 돌이 된 나무다. 지리산 지역도 고생대나 중생대에 지각변동이 심하거나 화산활동으로 나무가 썩지 않고 화산재나 진흙 속에 묻혀 화석으로 보존된 모양이다.     

 

   고도가 높아져 물길이 가늘어지자 박노욱이 "이제 곧 계곡이 끝나겠네?" 한다. 이대장은 고개를 흔들며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말한다. 정말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폭포와 이끼 암반 등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래서 지리산이다.

   

   피나물
   따스한 햇살과 바람이 겨우내 움추렸던 생명들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물방울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골짜기에는 물냉이와 이끼도 기운을 받아 기지개를 켜고 도처도처 살아 숨쉬는 소리가 보인다. 피나물이 노란 꽃잎을 열어 군락으로 피고  꽃망울조차 '나도 꽃'이라며 꽃대를 올리는 지리의 계곡은 싱그럽고 맑다.  

   괭이눈
   열매가 익을 무렵이면 그 모양이 고양이가 햇볕을 받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괭이눈이라 부른다. 괭이눈은 꽃이 작아 벌과 나비가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꽃받침과 그 주변의 잎까지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개별꽃

   토끼봉에서 보는 지리 주능선과 영신봉에서 삼신봉으로 흐르는 낙남정맥 
   산 아래부터 시작되는 봄은 뭇 생명들을 물들이고 서서히 산 위로 올라온다. 곧 지리 주능선도 봄바람을 맞아  신록으로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천왕봉과 중봉

   반야봉과 반야중봉. 앞에 날나리봉(삼도봉)과 멀리 노고단이 보인다. 삼도봉은 전라남도(구례), 전라북도(남원), 경상남도(하동) 3개도의 꼭지점이다.  

  범왕능선
  토끼봉에서 신흥마을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서 중간지점에 당재가 있고 좌측은 삼정마을 우측은 범왕마을이다.  

   토끼봉 정상에서

 

    중국의 문호 노신이 말했다는 人生三樂 즉,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그 중에서도 뭐니뭐니 해도 먹는 즐거움이 으뜸이다. 욕망을 채워주니.... 산에 다니는 넘들이 나이들이 들어서인지 반찬이 모두 채소류인데 집집마다 나름 준비하여 일류 한정식집 맛 못지않다. 특히 이대장이 가져온 매생이국이 별미다. 맨 앞의 마른 낙엽같은 콩잎은 경상도에서나 먹는데, 다른 지방 사람들이 소나 먹는 저런 것을 어떻게 먹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봤다.    

 

   식사 후 약간의 오침을 하고 범왕능선을 따라 당재를 향해 하산  

  금낭화
  산에서 금낭화 군락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얼레지는 높은 산 볕이 잘 드는 숲속에서 무리지어 자라는데  천성산 한듬계곡, 무척산 정상부근 등에도 군락이 많이 볼 수 있다. 씨에서 싹이 터 꽃이 피기까지 7년 이상 걸리는 탓에 자연이 온전히 보전되는 깊은 산속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씨는 개미 유충과 똑같은 냄새가 나 개미가 얼레지 씨를 땅속 개미집으로 가져가는데, 때문에 발아가 쉬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얼레지가 비교적 좁은 범위에 빽빽이 자라는 것은 이처럼 개미의 이동 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식물도 후손을 보기 위해 동물이나 곤충을 많이 이용하는데, 예를 들어 나무가 과육을 달게 하는 이유는 새나 사람이 먹고 씨를 멀리 퍼뜨리게 하는 전략의 하나라고.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 선 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 것인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삼정마을

   당재에서 내려와 삼정마을 앞 계곡에 다다르니 묵정밭에 두릅과 고사리가 지천이다. 잠시 머무르다 내려오니 합수내 아래 계곡이다. 계절은 바야흐로 알탕의 계절이다. 흘린 땀을 씻어야 하지 않겠는가?  산행 후 계곡물에 한 번 들어갔다만 나와도 개운하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몸을 씻는 것은 修身이니, 알탕 한 번으로 修身하고 집에 가서 齊家만 하면 治國은 모르겠고 平天下는 절로 될라나(?)

     이번 왼골~토끼봉~범왕능선 코스는 주능선으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이끼 아름다운 계곡으로 오르며 군데군데 물가에 사는 야생화 무리도 보고, 하산시에는 얼레지 금낭화 군락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다만 빗점골 합수내 수달래가 없어진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산행 종료 후 삼정마을에서 차를 타고 내려오다 계곡 여기저기 수달래가 붉게 자리잡고 있어 그나마 다시 차를 대고 계곡으로 내려가 수달래를 볼 수 있었다. 저번에 못찾은 東樵 金晳坤의 頭流萬墨 刻字도 찾았다.

   산을 다니며 여기저기 나무와 꽃, 바위에 새겨진 글과 골짜기에 얽힌 이야기를 무심히 하지 않으며, 스쳐 지나는 생명 있는 것과 생명 없는 것 하나에도 허투루 하지 않는 지리산 산행동지들이 나는 좋다. 생긴 틀과는 다르게 뭇 시인의 詩가 아무 때나 줄줄 나오는 이대장의 감성적인 머리,  2년간의 外道 끝에 부산으로 컴백하여 더듬거리며 내뱉는 노욱의 질박한 말. 언제나 조용히 좋은 사진 많이 찍어주는 한대리님, 퇴직 후에도 굳이 술 사겠다고 우기는 건주! 그래서 언제나 기다려 지는 것이 산행동지들을 볼 수 있는 매월 첫째 토요일, 지리산 가는 날이다.  

 

'지리산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일출능선  (0) 2012.06.13
지리산 백운능선(12/6/2)  (0) 2012.06.04
지리산 왼골(토끼봉)  (0) 2012.05.09
지리산 범왕능선과 의신옛길   (0) 2012.04.19
지리산 범왕능선&의신옛길  (0) 2012.04.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