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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모음

지리 황금능선 산행기

by 하얀 사랑 2012. 3. 12.

지리산 황금능선
[염기훈 2012/03/12 08:36 / 조회수:196 / 추천:1]

○ 일시 : 2012. 3. 3 (토) 05:20 교대앞

○ 코스 : 덕천서원 07:30 - 도솔암 - 구곡산(961m) - 황금능선 - 국사봉 - 느진목 - 청소년수련원 17:30

○ 산행인원 : 이재구 한영택 송건주 염기훈


   『하루종일 천왕봉만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꿈의 능선, 어느 곳이든 고개를 들면 잎 진 겨울나무 사이로 천왕봉의 위용을 볼 수 있는 능선길. 길을 걸어 주능선 가까이로 다가갈수록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지리산,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지리산꾼이면 반드시 거쳐야 할 코스. 써레봉에서 시작하여 구곡산까지 간다면 대체로 내리막길이라 훨씬 수월하겠지만, 천왕봉을 등지고 걷는 것보다는 좀 힘들어도 천왕봉을 가슴에 떠안고 氣를 받으며 걸어야 제대로 걷는다 할 수 있겠지요. 

 

   황금능선은 산죽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원래 이름 자체가 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누렇게 물든 산죽잎이 햇빛에 반사되어 황금빛으로 빛난다 하여 황금능선이니, 어쨌든 산죽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그러나 낭만적인 명칭과는 달리 실제로 산죽은 단풍드는 일도 없거니와, 걸어보면 오히려 지리산의 능선 중에서 황금코스라 할 만하기에 황금능선으로 부르는 게 맞지 않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의 구곡산~느진목을 주파하면 예전에 우리가 걸었던 길(써레봉~느진목)과 합쳐 황금능선을 거의 잇는 것이 됩니다.(구곡산~외공 미답)  그래도 작년 느진목에서 장구목을 거쳐 무재치기 폭포까지 갈 때의 산죽보다는 낫습니다.』 by 재구

 

   이대장이 황금능선을 가자며 그 이유를 구구절절이 읊었다. 요약하자면 황금능선은 천왕봉을 마주보며 산행하는 코스가 묘미가 좀 있으니 산죽으로 길이 다소 거칠더라도 가자는 것이다.  산길이 아무리 거칠어도 그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를 멋지게 말하는 道伴이 있으니 넘지 못할 능선이 어디 있고 건너지 못할 계곡이 어디 있겠는가.   

 

 

   시천면 원리의 덕천서원 
  

   산행기점인 도솔암으로 올라가기 전 입구의 덕천서원에 차를 대고 둘러본다. 서원 앞 덕천강가에는 洗心亭이 서 있다.  

   1576년(선조 9) 남명 조식선생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최영경, 하항 등 사림()들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건립한 서원이다. 1609년(광해군 1년) 현판과 토지 등을 하사받아 덕천()이라는 이름으로 이 되었다.    
 

  덕천서원 옆길로 따라 올라 도솔암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한다. 구곡산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간단하면서도 명확하여 보기에도 좋다.      

 

  황금능선

  구곡산 정상에 서니 오늘 가야 할 S자의 황금능선과 지리산 주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써래봉에서 시작하는 황금능선은 국사봉과 구곡산을 거쳐 시천면 외공리 덕천강까지 이어지는데 능선 왼편이 산청양수발전소의 하부저수지가 있는 시천면 신천리와 중산리 계곡이고 오른편이 내원골과 장단골로 연결되는 길고 긴 능선이다. 

  주능선을 향한 이런 장구한 능선은 지리산에서도 몇 되지 않다.  이대장은 이 능선을 걸으면 봉우리에 설 때마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 천왕봉이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멀게 느껴지던 주능선이 산죽밭을 헤쳐 전망대에 서면 어느듯 눈 앞에 나타나는 환희심 그것이  황금능선만이 지닌 매력이라고 주장한다. 구곡산에서 황금능선을 보자니 구비치는 산줄기의 힘찬 용틀임을 보는듯 하다.  

   3월 첫주, 오는 봄소식은 아득하여 산정에는 아직 눈이 새하얗고 다만 봄바람에 실려오는 구름만이 봄의 기운을 먼저 알려주는 듯 점차 몰려오더니 산행 내내 주능선의 시야를 가려 가슴에 품고온 환상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아침께 잠시 맑던 하늘에는 구름이 덮는다.     

   내원사. 신라시대 고찰이며 석조비로자나불상과  3층석탑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내원골. 내원사 입구에서 왼편이 내원골, 오른편이 장당골이다.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의 고향이 삼장면 내원골이다. 1950년 10대 후반의 나이에 성석근과 결혼했으나, 한국 전쟁 중 인민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 도왔던 남편이 인민군에 입대하면서 결혼 몇 달 만에 헤어지게 되었다. 1951년 2월에 남편을 찾아 겨울옷을 챙겨들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20여 일 동안 같이 지낸 끝에 성석근이 사망하자 유격대에 합류하여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남성대원인 이홍이와 함께 1963년까지 체포되지 않아 '마지막 빨치산'이 되었다.

   1963년 11월 12일 새벽에 생가 근처인 지리산 내원골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함께 있던 이홍이는 사살되었다. 체포 당시 총상을 입은 다리를 절단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5년 석방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남부군총사령과 이현상이 빗점골에서 사살된 것이 것이 1953년 9월이니 사실상 빨치산 활동이 소멸되고도 10년을 더 지리산에서 은거생활을 한 것이 전설이 된 것이다.  

 

 

 


  황금능선의 지리산 산죽은 산꾼들에게 악명이 높다. 써래봉에서 구곡산을 잇는 긴 능선 전체가 일부구간을 제외하고는 
키높이로 우거진 산죽에 점령당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슬이나 비에 젖은 산죽을 헤쳐나가자면 옷이 흠뻑 젖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산행 내내 고개를 들기도, 숙여 걷기도 난감할 뿐더러 배낭을 끌기도하고 뺨을 후려치기도 하여 사람을 괴롭게 한다. 

  식물도 경쟁을 하며 자라는 탓에 한 종이 지역을 차지하면 다른 종의 식물은 그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고 한다. 기후 온난화 탓이지 지금 지리산이고 백두대간이고 온통 조릿대에 점령당하여 다른 식물의 식생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작년 겨울 매우 추웠을 때 백두대간에 조릿대가 집단 동사(?)한 것을 보기도 했는데, 온난화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온 산이 산죽에 점령당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사족 : 조릿대(산죽)는 고혈압, 당뇨, 위장병, 홧병, 불면증, 신경쇠약 등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잎이나 줄기 뿌리 등을 잘게 잘라 그늘에 말려 차로 마시면 된다.  그런데 잎은 차로 달여보니 잘 우러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道伴

    산길을 절반 쯤 갔을 때 배낭에서 핸드폰이 뚝 떨어졌다. 배낭을 내려 보니 지퍼가 열려있고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떨어진 주변을 둘러 보아도 당최 보이지 않는다. 아뿔싸. 전번 쉬었던 자리에서 간식 꺼내느라 배낭 위쪽 주머니 지퍼를 열고는 닫지 않는 것이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혼자 전번 쉬었던 자리까지 갔다 오겠노라니 굳이 모두 함께 찾자며 되돌아 나선다. 어느 곳에 흘린지도 모를 물건을 찾자고 산죽아래  눈을 부라리며 네 명이 모두 갔지만 허탕을 치고 돌아오니 한 시간 반이 더 걸렸다. 다행히도 처음 휴대폰을 떨어뜨린 그 자리 바위 아래에서 떨어진 지갑을 찾았다. 다들 기쁜 마음으로 다시 출발!  

 

   절집에서 함께 수행정진하는 스님을 도반이라 하는데, 글자대로 길을 함께가는 사람이 道伴이라면 산행동반자도 도반이기는 마찬가지다.  지리산이나 대간이나 마음이 잘 맞아야 장기간 길을 가는데 서로 어긋남이 없기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옛말에  "함께 말을 할만한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말을 하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이는 사람도 말도 잃어버리지 않는다"했는데  산길에서 지갑을 잠시 잃어버리고 나서 사람도 말도 잃지 않는 지혜를 배운 것 같아 더 기쁘다. 

  

  국사봉(1037.5)

  내원골과 중산리를 넘는 재가 국사재인데 1,2,3개의 국사재가 있다. 좌측으로 순두류와 마야계곡이 보인다.   '國師峰'이라는 지명은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데 대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를 연결시키거나 도선국사를 연결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보다는 국사봉이 있는 곳에 기도처가 많은 것으로 보아 민간신앙과 더 관련이 있을 것이고, 지도에 따라서는 국수봉國帥峰이라고 표시된 것도 많은데 사師와 수帥의 혼돈으로 본다.

 

  『국사재는 국사당(단)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며, 국사당(단)은 국사신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局司壇(堂) 또는 國師堂(壇)이라 쓰는데, 國師가 國帥로 바뀌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국사신은 한 지역을 관할하는 신이니, 마을의 범위가 확대되어 나라가 되기도 하고, 민간신앙에서 모시는 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고려 조선의 건국과 관계된 도선국사나 무학대사와 결합된 것으로 생각된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국사당을 우리의 고유 민간신앙인 서낭당과 같은 것으로 보며, 서낭(神)은 마을 수호신을 뜻한다. 옛날 마을 입구나 마을과 마을 사이 고갯마루에는 서낭당(단)이 있었으며, 마을의 안녕과 오가는 사람들의 무사왕복을 빌었던 곳이다. 堂이라고 꼭 집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돌무더기를 쌓거나 오래된 나무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 서낭당(단)이 있었던 고개를 당재, 당고개라 하는데 전국에 많이 있는 지명이다.

  그렇다면 지도에 표시된 국수재는 국사재가 맞고, 국수봉도 국사재 옆에 있고 또 지역주민들도 국사봉으로 부르니 국립지리원의 지명도 국사봉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by 재구

 

  날씨 탓에 국사봉에서 보는 천왕봉 등 주능선의 위용을 감상하지 못함을 허탈하게 생각하며 마지막 갈림길인 느진목재로 향한다. 느진목재는 중산리에서 무재치기폭포를 가면서 가로질러 간 적이 있고 써래봉에서 중산리로 하산하며 내려간 적이 있어 낮설지 않은 곳이다. 

 

   지리산 산신제단을 지나 순두류계곡에 도착하니 지난 여름 큰 비에 계곡이 깊게 파여 망가졌다. 산아래 외공리에는 다리 하나가 떠내려 갔다고 한다.     

   경상남도 자연학습원 입구

 

   중산리에서 운행하는 법계사 버스 종점이다. 법계사 버스가 있는지 물어보니 벌써 끊겼다고 한다. 표지판에 18:00까지 되어있는데요 하니 보통 17:00까지고 그건 성수기 때 이야기란다. 중산리까지 3km를 더 걸어내려가야 한다. 10시간 산행 후 피곤한 김에 여기까지 택시를 불러 아침에 차를 대오 넣은 덕산의 도솔암까지 가자니 택시는 중산리 탐방안내소까지밖에 못온다고 한다. 그럼 한 넘이 다리를 삐었다고 하면 안되냐고 물으니 그건 공단직원이 입회하여야 한다고....ㅎㅎ  별 수 있남. 다시 터들터들 아스팔트 길을 걸어내려 온다. 산길 10시간 걸어도 아스팔트길 1시간 존내 지겹다. 

 

   중산리 탐방안내소에서 택시를 타고 이대장은 아침에 차를 댄 도솔암까지 가고 나머지는 덕산서원 앞에 내려 기다린다. 고요한 시골마을에 사람 몇이 움직이니 동네 개짖는 소리만 요란하고, 어둠에 쌓인 덕산서원에는 솔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데 덕천강가  洗心亭에 밤바람이 부니 마음을 씻음인가 땀으로 젖은 몸이 서늘해진다. 남명의 학문적 업적이나 사상적 경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으나 군왕이 불러도 사양하며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지리산에 은둔한 기개만으로도 높이 기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遯世不見知而不悔 唯聖者能之 세상에 은둔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여도 후회함이 없으니 이는 곧 성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중용의 이 글귀는 남명선생같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특히 별 배알도 없는 짓을 다하며 돈과 명예, 출세를 구하는 세상에서.... 

 

   지난 2.28일 이성부 시인이 71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이대장으로부터 멜이 왔다.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란 시집을 냈고, 지리산을 좋아하여 '지리산'이란 시집도 낸 분인데 그 양반이 지리산을 발로 다니며 쓴 남명에 대한 시 한구절

 

   다시 남명                 이성부 

 

  세상에 나아가서 부대끼는 사람보다

  세상에서 숨어 귀 막고 눈 가린 사람이

  세상을 더 잘 터득하는 법!

  큰 산을 끌어와서 방에 가두고

  좁은 문 닫아 잠그면

  그리운 얼굴들 이리저리 헤메어 신발 찾는 일

  선연하게 내려다보이느니

  바람불어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에

  귀가 트이고 눈이 맑아져

  잠자코 있음도 오히려 살맛난다네

  큰 산에 묻힌 외로움과 어깨동무

  만권 서책 즐거움과 호미거리

  사람도 큰 산에 숨으면

  그 산을 닮아 더욱 커져가는 것

  내 오늘에서 깨달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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