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모음

2013 시산제 산행기

by 하얀 사랑 2013. 1. 16.

지리산 한신계곡과 영신봉 시산제
[염기훈 2013/01/16 16:52]

 

출발일시 : 2013. 1. 12 (토) 05:00 

○ 코    스 : 백무동 07:45 - 한신계곡 - 세석 - 영신봉 (시산제)  - 영신대 - 바른재능선 - 백무동 17:00 

○ 산행인원 : 5명 (이재구 한영택 김택영 송건주 염기훈)

 

  영신봉은 예로부터 지리산의 신령스런 기운이 모이는 봉우리로,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한 눈에 담을 수 있고, 세석평전과 영신대를 품고 있으며, 낙남정맥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이번 산행은 백무동에서 출발하여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세석까지 6.5km 한신계곡 산행 후 영신봉으로 이동 지리산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곳에서 2013년 지리산행의 출발을 告하고 들고 날 때 산행동지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시산제를 지내고, 옛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 영신사지를 둘러보고 하산하며 겨울 설산을 매는 낭만을 누려보자는 것이다.

 

 

 

   백무동에서 출발하니 7시 45분이다. 눈이라도 좀 내렸으면 하는 바램과는 달리 하늘은 맑고 싸늘하다. 대신 전에 내린 눈으로 깊이 덮여있지만 먼저 다녀간 산꾼들 덕분에 산길만은 잘 다져져 있다. 백무동에서 한신계곡을 따라 약 한 시간가량 오르면 처음 만나는 폭포가 첫나들이 폭포인데 빙벽이 폭포의 흔적을 대신한다.

  

 

    산은 높아도 구름을 막을 수 없고 계곡이 깊어도 흐르는 물은 쉬는 법이 없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겨울 지리산 눈덮힌 계곡을 타고  얼음장같이 맑디 맑은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흐른다.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인다고 해야 할 만큼 물과 소리는 音色의 조화를 이루며 맑다. 

 

  "逝者如斯夫, 不舍晝夜(서자 여사부 불사주야)  가는 것이 이와 같이 밤낮을 쉬지 않는구나!" 공자께서 강가에 서서 한 말씀이지만 어찌 흐르는 물만을 이야기 한 것이겠는가.

 

    지리산을 한 코스만 수십 차례를 다니더라도 계절 따라 다르고, 아침 저녁 다르고,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겨울 지리에 서면 매화와 철쭉 화사한 봄이 그립고, 봄이 되면 향기 진한 여름 숲이 간절하며, 더위가 기승일쯤이면 만추의 가을이 가슴에 먼저 다가오는 법이라. 잎 내리는 가을 숲에 서면 황량하여 맑은 설원의 겨울 지리산이 시리도록 사무친다. 그렇게 念念相續의 생각생각으로 이어지는 관념이 흘러 重重無盡의 지리산을 만들어 내고 뭇 생명을 산으로 부르는 것인가. 그러니 어디 흐르는 것이 물 뿐이겠는가.            

 

  가내소 폭포

 

  백무동에서 두 시간 반쯤 올라오니 가내소폭포다. 한신계곡과 한신지곡과의 분기지점 인근이다. 가내소에는 관련된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있는데,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 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는데,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에이~, 나의 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국공에서 설치한 안내판에 있는 이바구다. 

 

    가내소폭포를 지나고 오층폭포가 나타나는데 전에 없던 데크 전망대를 새로 만들었다. 지난 태풍 때 계곡 여기저기 다리들이 떠내려가고 했는데 국공에서 새로 일제히 정리를 했다. 가내소 폭포에도 새로 만들었다.  

 

   지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빙벽을 이루어 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한신계곡에서는 한신폭포가 웅장한데 폭포는 등산로에서 숨어있어 지나치기 쉬우나 조금 올라가서 보니 계곡 아래로 거대한 모습이 엿보인다. 

     

   세석평원에 도착하니 백무동에서 3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겨울 세석산장은 적막하여 간혹 몇 사람의 산꾼들만 눈에 뛸 뿐이고 예전에 논밭을 일구었던 세석평전은 이제 구상나무 숲으로 변해간다.

 

  영신봉에서 시산제를 지낸다. 제물 준비는 분담하여 따뜻한 탕국, 돼지머리 눌린 것, 조기, 세 가지 나물, 떡과 조율이시(棗栗梨枾) 등을 골고루 갖추었다. 이대장이 써 온 축문을 낭랑하게 읊는다. 

 

  祝 文

 

  癸巳年 정월 열이튿날,

  지리산의 신령스런 기운 모이는 곳, 영신봉에 올라

  天地神明과 智異山神靈님께 엎드려 告합니다.

 

  사방을 돌아보니

  눈 덮인 지리능선 굽이쳐 흐르고, 사방팔방에 솟구친 산들 속에

  아, 우리네 몸은 아득한 천지간에 한알 좁쌀이라,

  우리의 一生이 잠깐임을 슬퍼하고 山川의 끝없음을 부러워할 뿐입니다.

  그리하여 다함이 없는 저 宇宙의 기운을 즐기고 싶어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여기 모였으니,

  김택영 송건주 염기훈 이재구 한영택이라…

 

  주인 없는 저 바람과 햇살을 듬뿍 안고 하늘 아래 우뚝 서서

  눈을 들어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한 눈에 담고

  팔을 벌려 천산만산을 가슴에 품으니

  호기로운 마음 천지에 가득 차

  세상에 어떤 통쾌함이 있어 이것에 비길 것인가 싶습니다.

 

  지난 해에도 천지신명과 지리산신령님의 보살핌으로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하였습니다.

  오늘 저희가 癸巳年의 뜻깊은 첫 지리산행을 시작하면서

  神靈님께 한잔 술을 부어 올려 한해의 無事山行을 祈願하오니

  바라옵건대,

  작은 정성이나마 거두어 주시고

  올해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무시로 산으로 들고 날 때

  변함없는 사랑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비나이다.

 

  논어 팔일편에 '祭如在, 祭神如神在'라는 구절이 있다.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에는 생존해 계시는 것처럼 하고, 신을 제사 지낼 때에는 신(神)이 (앞에) 있는 듯이 하라'는 말이다. 해서 비록 우리끼리의 시산제지만 지리산산신령이 앞에 계시는 듯 제물 하나라도 정성을 들이고, 축문 한 자라도 마음을 실어 읊으며, 맑은 술 올리며 절을 하는 것이라. 그동안 우리가 지리산을 드나들며 얻은 것들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또 앞으로 바라는 것들이 많지 아니한가. 그러니 우리 아니면 언 넘들이 지리산에 이만한 정성을 들이겠는가! 

 

  당초 세석산장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기로 했으나 바람이 없고 날이 따뜻하여 시산제를 지내고 바로 옆 바위 사이로 자리를 옮겨 눈 위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點心)이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말이다. 간단한 식사를 말함인데, 벽암록에 그 유래가 있다.

 

  금강경 해설에 대해 박사급인 덕산스님이 『금강경』 주석서를 지고 호남 예주란 곳이 이르렀다. 배가 고파 주위를 둘러보니 한 노파가 떡이며 만두를 팔고 있다가 덕산에게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스님, 바랑 속에 든 게 무엇이오."  덕산은 으쓱하며 말했다. "『금강경』주석서요" "그럼 물어 봅시다. 제대로 대답하면 만두를 공짜로 드리겠소. 대답을 못하면 다른 곳으로 가시오." "물어보시오."  "그 경에 이런 말이 있지요. '과거의 마음도 잡을 수 없고, 지금의 마음도 잡을 수 없으며, 나중의 마음도 잡을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 하시오."  덕산이 말문이 터억 막혔다.      

 

   안주가 푸짐하니 술잔이 연거푸 오간다. 마음에 수도 없이 점을 찍고 나니 배도 부르고 등 뒤로는 서늘한 바람이 일며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최촉한다.  

 

 

  자리를 정리하고 저 아래 쪽 영신암이 있던 영신대로 향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식사를 하고 나니 주변 경치가 눈에 환하다. 겨울산이 주는 상쾌함은 군더더기 없는 맑은 시야에 있다. 영신봉 정상은 제법 넓고 평평하며 작은 구상나무들이 바람을 맞으며 키를 키우고, 낮익은 풍경이지만 동으로 천왕봉과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이 선명하여 발길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 하고 반야봉 가는 능선이 아득하다. 반야봉 뒤로 서쪽 하늘에는 금방 눈이라도 쏟을 기세로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내내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남쪽으로 삼신봉 가는 능선이 줄을 지어 내달린다.   

 

  천왕봉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과 장군봉

 

   영신대   

  영신사지 (영신대)

 

  영신사(암)가 있던 곳이다. 옛사람들이 지리산 유람시 천왕봉에서 내려와 의신으로 가거나 백무동으로 갈 때 영신사(암)는 그 길목에 있었기에 숙소로 많이 이용하던 곳이다. 유람기에 보면 영신암 뒤에 가섭전(迦葉殿)이 있고, 가섭상이 있었는데 왜구가 칼질을 했다는 내용도 있다. 가섭전 뒤쪽으로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봉우리에 오르면 좌고대가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유두류록에는 『가섭전의 북쪽 봉우리에 두 개의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이른바 좌고대이다. 그중의 하나가 반반하고 위는 뾰족하며 꼭대기에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데, 그 넓이는 겨우 한 자 정도였다.』하여 지금도 마음 먹으면 찾을 수 있으리라. 남효온의 지리산일과의 『영신암 뒤에 가섭전이 있었는데, 세속에서 영험이 있다고 말하는 곳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예부터 이곳에 기도발이 잘 받는 것으로 소문나 있던 모양이다.  이대장도 큰 동서에게 여기를 알려줬는데 자주 찾아오고 해서리 뭐 기가 충만해지더라나...나도 알아서 잘 해주시라고 눈밭에 엎드려 절했다.   

 

 

   영신대에서 눈을 헤치고 서북쪽으로 돌아나와 능선 선다. 이곳을 속칭 '바른재능선'이라 하는데 제대로 정립되어야 할 명칭이기도 하다...왜냐하면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밥을 먹고 모두 절의 서북쪽으로 가 고개 위에서 쉬었다. 멀리 반야봉을 바라보니 (...) 지름길로 따라 곧바로 내려가니 (食罷 幷寺之西北 憩于嶺上 望般若峯 (...) 逕由直旨而下)』에서  직지(直旨)에 대한 해석의 오류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재구는 "옛 국역본(민족문화추진회)에 '직지(直旨)를 경유하여'라 하여 직지(直旨)를 지명으로 번역하였고, 이후 문헌에도 직치(直峙)가 등장해 그런 줄로 알았지요. 거기서 바른재 곧은재 등의 명칭이 나왔고...최석기 번역에는 '곧바로 지름길로'로 하여 지명을 배제했지요. 지금 보면 이게 맞는 것 같애."라고 말한다.

 

   해서 열혈 산꾼들은 直旨를 直峙로 해석하여 김종직 선생이 덕평봉 아래의 바른재(直峙)를 통해 하산했다거나 아니면 이곳이 '바른재'이겠거니하며 그 발길을 따라 탐구산행을 이어가고 있다.  

 

 

  마치 우산대를 접은 듯 잎을 말아버린 것이 겨울철 생존전략인 모양인데 굴거리나무라고 한다.  

  구상나무에는 딱따구리가 막 쪼아 구멍을 낸 것도 있다. 조그만 새의 머리로 딱딱한 나무에 구멍을 낼 수 있다니 참으로 생명은 위대해 보인다.

 

 

   당초 내려서려던 능선길이 아닌 계곡산행을 하게 되었다.  2시 조금 넘어 능선에서 출발하여 계곡을 타고 내려오다 눈이 너무 깊어 다시 돌아나가 아침에 왔던 길로 하산하는 것이 어떠하냐는 이대장의 의견이 있었지만 그냥 내려가기로 했다. 2시간여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무릎까지 빠지는 것은 보통이고 미끌어지고 자빠지기도 하는데 나는 거꾸로 자빠지기도 하더라. 미끄럼을 타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쌓인 눈 덕분에 다치는 일은 없었다.

 

 

   내려오니 한신폭포 200m 윗쪽이다. 능선에서 2시간 정도 걸렸다. 아이젠이 벗겨져 나갔는데도 몰랐는데 뒤에 오던 송건주가 발견해 다시 신발에 채웠다. 이대장과 한영택도 아이젠 한 짝씩 눈 속에서 잃어버렸다. 스패츠를 했지만 등산화 속으로 물이 배어들어 발이 축축하다. 우쨌던 첫 산행을 눈 속에서 뒹굴고 나니 기운이 더 나는 것 같다. 백무동까지 3.7km를 한 시간만에 내려가니 5시다.  

 

   지난 해 12월 마지막 산행이 김종직 선생이 지리산에 들 때 올라간 독녀암과 처음 숙박한 고열암 코스 답사였다면, 이번 첫 시산제 산행은 유두류록에 나오는 김종직 선생이 영신암에서 아침 섬진강을 바라보고 서북능선을 거쳐 백무동으로 내려간 마지막 코스를 답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두류록 이전 1463년(세조 9) 이륙의 '지리산기'가 있기는 하지만 (이재구는 이륙의 '지리산기'는 산행기라기 보다는 리포트라고 말한다.)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어 사실상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이 지리산 답사기의 전범으로 꼽히고, 그 이후 김일손 남효온 성여신 등 그 제자들의 산행기가 줄을 잇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유두류록의 산행경로를 모두 답사하게 된 것인데, 다만 이번 하산길 능선을 찾아 내려오다 바위봉우리를 우회하는 길로 착각하여 영신북릉과 바른재능선 사이 계곡으로 빠져버려 당초 계획했던 바와는 조금 어긋나긴 했지만 우쨋든 첫 산행 고군분투하며 아름답게 끝냈다.  

'지리산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달궁옛길과 황령암지를 찾아서   (0) 2013.02.07
지리산 만복대(1,438m)  (0) 2013.02.03
지리산 영신봉 13년 시산제  (0) 2013.01.13
지리산 영신봉 시산제  (0) 2013.01.13
지리산 천왕봉  (0) 2013.01.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