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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모음

지리산 형제봉 원강사지를 찾아서

by 하얀 사랑 2014. 4. 1.

지리산 형제봉 원강사지를 찾아서
[염기훈 2014/03/21 13:11]

 

○ 일시 : 2014. 3. 8 (토)

○ 코스 : 중촌(화개) 08:00 - 원강사터 - 형제봉 - 원강재 - 전망대 - 상훈사 - 회강골 - 중촌 16:15

○ 함께간 넘 : 이재구 박노욱 한영택 송건주 염기훈

 

 

  겨울의 끝자락이 지나가는 화신(花信)은 섬진강변의 매화에서 시작되니 강바람을 타고 도는 은은한 향기가 그리워 '3월이나 4월 산행은 화개 쪽으로' 하고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데, 채 피지도 않은 매화 향기에 흑심을 품고 있었던 이가 나만이 아니었던지 악양 형제봉이 이번 산행코스에 들어갔다. 형제봉은 지리산 국립공원지역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그렇다고 지리산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니, 단지 관리영역에 따른 차이일 뿐 영신봉에서 뻗어나온 남부능선의 산 갈래 중 하나이고  광양 백운산과 마주하며 섬진강 800리 맑은 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산줄기이기에 그렇다.  

 

  아침을 하동의 재첩국집에서 먹고 강변을 달리다 보니 건너편 다압마을의 매화는 군데군데 꽃을 피웠다. 좀 이른가 싶기도 하지만 올봄 날씨가 따스한 탓이리라.

 

  산행 초입은 쌍계사 못가 화개면 정금리 골짜기 중촌에서 시작한다. 초입이 비슷한 동네가 있어 잘못 들어갔다 차를 돌려나오는데 가락국 수로왕비인 허왕후가 칠불사로 출가한 일곱왕자를 만나러 왔다가 머물렀다는 전설이 있는 대비리다. 조금 더 가 정금리에서 마을 안을 지나 깊은 골짜기 속으로 들어간다. 쌍계사 앞 동네가 신라 때 시작된 차 시배지인만큼  정금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가 있는 곳인데  몇 년전 동해를 입어 잎이 나지 않는 등 고사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이 있었다. 

 

 

   회강골을 따라 올라오다 중촌(中村)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한다. 회강골은 정금리에서 상훈사까지의 긴 골짜기를 말함인데 그 옛날 이 골짜기에 스님들이 모여 경전을 강독(會講)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큰 사찰이 있어 스님들이 많았을 것이니 중촌이란 지명은 '중들이 살던 동네' 뭐 그런 이름같다. 이대장은 회강골은 해갱골로도 발음되고 그러다보니 전란으로 해골이 많이 나온 골짜기라는 해갱(骸坑)로도 전해지기도 했단다.

  

  중촌에는 몇 가구가 살고 있고 섬진강변 부춘마을까지 지리산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어 오가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한적한 산골마을의 정적을 깨뜨릴 것 같은데, 오늘 우리가 가는 산길 중 오르막의 일부가 둘레길 14코스 구간에 포함된다. 마을 끝 작은 팻말을 달고 산꾼들에게 차와 간식을 파는 주인장은 서울에선가 사업을 하던 양반인데, 등산와서 우연히 이곳에서 쉬다 하늘이 호수처럼 맑고 아름다웠던지 아예 짐을 싸서 이곳으로 눌러앉아 버렸다고 한다. 하여 '하늘호수'라는 팻말을 작은 달고 산골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으니 '문득 깨닫는다'는 말이나 '출가'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해당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겨울은 가는둥마는둥, 봄은 오는둥마는둥 겨울도 아닌 것이 봄도 아니어서 산속 나무들도 가지 끝으로 물을 올려야할지 새싹을 내밀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때가 지리산의 3월이다. 연초록 숲을 보려면 산 아래는 4월, 위는 5월이나 지나야 겠지만 그런데도 용감한 녀석들이 있으니 생강나무 노오란 꽃잎 군데군데 내밀었고 히어리도 꽃망울을 늘어뜨리기 시작한다. 히어리는 한국토종으로서 지리산에 자란다.  

 

 

 

  중촌에서 형제봉 오르는 산길은 매우 가팔라 둘레길을 쉬엄쉬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힘든 코스가 될 것 같다. 이대장은 부춘 가는 둘레길은 원래 이 길이 아니고 다른 쪽으로 나 있다고 말한다. 1시간 30여분을 올라가니 넓게 닦인 임도가 나온다. 국립공원 안에는 임도를 이리 낼 리 없는데 공단의 영역 밖이다보니 자치단체에서 산허리를 자르고 길을 내고 보는 것이다. 특히 형제봉 능선 아래에는 섬진강변 부춘에서 시작된 임도가 원강재 활공장 아래 위로 부지기수로 나있는데 길의 용도는 '묻지마'이다. 나도 약간의 공범의식이 없지 않은 것이 편하게 승용차로 임도따라 원강재 활공장까지 와서 형제봉능선으로 산행을 하기도 하고, 왕시루봉으로 넘어가는 서산일락(西山日落)을 즐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뭏튼 임도를 따라 쭉 내려가면 부춘까지 가는데 이미 만들어 놓은 임도를 둘레길로 활용하는 것은 지자체의 센스랄까.     

 

                              

 

 

  원강사지(元岡寺址)를 찾아서

  임도를 가로질러 산능선을 타고 가다 산죽숲을 헤치며 원강사지로 찾아든다. 군데군데 고로쇠를 채취하느라 매달아 놓은 비닐주머니에 반쯤 고로쇠물이 차 있는데 추위에 얼어 돌덩이가 매달려있는 것 같다.    

 

  원강사지는 형제봉과 활공장 사이 중간쯤 지점의 임도 아래인데 산죽에 묻혀 있어 찾아드는 것조차 쉽지않다. 헤집고 들어간 산죽밭 속에 2기의 주춧돌이 바위들과 섞여 뒹굴고 있어 절터임을 확인시켜준다. 얇은 복련으로 장식한 것이 석등의 기단석인가 했는데 이대장은 간주석을 지탱하는 홈이 없는 것으로 보아 건물의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로 단정한다. 윗쪽에 몇 기가 더 있었다고 하여 찾아보다 무성하게 자란 산죽 때문에 포기했다. 주변에 무너진 축대 등이 여러군데 있어 절의 규모가 제법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원강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청동정병과 청동범종 등 유물이 국립진주박물관에 있고 청동정병은 고려시대에 절에서 많이 사용하던 것이라 최소한 고려시대 또는 그 이전에 창건된 절로 추정할 수 있겠는데, 뜻밖으로 낡은 목탁과 향로가 바위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고 움막의 흔적이 있어 근래 어떤 스님이 한 마음을 내어 용맹정진 한 듯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인연이 다하면 폐사지도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법, 향을 살라 숲으로 흐르던 그윽한 내음은 세상 속으로 울려 퍼지던 목탁소리와 함께 가뭇없이 사라지고 주춧돌에 새겨긴 복련(覆蓮)의 아름다운 조각만 천 년의 풍파에도 고스란히 남아 폐사지를 찾아드는 후세 사람들에게 산중 법문을 전하고 있으니 '蘭의 향기는 천리를 가도, 法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 말은 원강사지에서 들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 

 

 

  원강사지에서 조릿대숲을 헤치며 나와 형제봉 능선으로 향한다. 길은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된다. 다시 하나의 임도를 가로지르고 완만한 전나무숲으로 들어서니 형제봉 능선이다. 임도가 끝나는 활공장에서 시작하여 제2 형제봉, 형제봉, 신선대구름다리, 고소산성, 외둔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아름다운 섬진강과 악양의 무딤이들을 바라보며 걷는 한나절의 멋진 산행코스다.

 

   두 개의 봉우리가 있기에 형제봉인데, 몇몇 뜻있는 동네 유지들의 합작인지는 모르겠지만 '형'이 '성'으로 발음되는 경상도식 특성을 이용하여 형제봉(兄弟峯)을 성제봉(聖帝峯)으로 변신시키고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이대장 "형제봉이야 자주 다녔으니 갈 것 없다"고 하니 한영택 대리 "안가봤습다"며 금방 갔다온다. 잠시 노닥거리며 놀다 활공장으로 향한다.              

 

  제 2형제봉

 

2008.5월 형제봉능선에서 본 섬진강과 무딤이들

 

 

   원강재 위 활공장에 도착하니 밥 먹을 시간이다. 악양에는 활공장이 두 군데로서 구재봉과 이곳인데 구재봉에서는 간혹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것은 보았으나 이곳에서는 본 적이 없다. 산악회에서 시산제를 하는지 왁짜지껄한데 바리바리 싸온 짐을 내리느라 그런지는 몰라도 차가 들어가서는 안되는 곳까지 가 있다. 더러 인정 있는 아저씨들도 있어 막걸리를 마시라고 권하기도 한다.   

 

 

  활공장에 서서 보면 저 아래편에 암자가 보이는데 상훈사(祥勳寺)다. 회강골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몇 년전 하동에 근무할 때 주지 스님이 전기 넣을 방법이 없냐며 찾아오신 적이 있었는데 함 가보니 정금리 말단에서 4km는 족히 넘는 거리로 보여 피차 공사비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곳이었다. 그 때 건축 불사가 한창이었는데 이후 몇 동의 건물이 더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하산은 활공장에서 아래쪽 원강재로 쪽으로 내려서서 임도따라 가다 국립공원지역으로 진입 상훈사 뒷편 능선까지 가서 상훈사로 내려오는 코스다. 능선따라 상불재나 하동 독바위까지 더 가면 쌍계사나 청학동, 삼신봉으로 이어진다. 활공장에 올 때면 언제 저 능선으로 가보나 했는데 이번에 결국 가게 되었다. 임도가 끝나는 부분부터 지리산 국립공원지역이다.  

 

 

  상훈사 뒷편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보니 구재봉과 하동 독바위가 일직선상에 놓이며 악양벌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잠시 쉬며 "이 봉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없단다.  뭐 이런 장난이야 하면 안되는 줄 알지만  "그럼 우리가 하나 만들자."며 매직으로 『재구봉』이라고 돌에 써놓았다. 악양 남쪽 끝에 구재봉이 있으니 북쪽 끝에 재구봉이란 의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바람과 햇살에 글자는 날아가겠지만 언젠가 구재봉에서 칠성봉과 여기 능선을 거쳐 형제봉 능선을 타는 악양벌을 한 바퀴 휘 도는 기회가 오면 그런 익살스런 기억이 되살아 날 것이라.  

 

  능선에서 상훈사 뒷편으로 내려서는 산길은 인적이 드문 곳인지라 그런지 좁고 산죽이 무성하여 애를 먹었는데 상훈사까지 내려오니 조릿대의 성가신 기억은 금새 가셔버린다.

 

 

 

   뒷편으로 해서 경내로 한 바퀴 둘러보니 단청을 입히지 않아서인지 우중충하고, 건물 배치가 골짜기에 지형에 맞추느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산만하게 보인다. 스님 한 분이 멀리서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오더니 마시라며 준다. 스님이 직접 주시는 것은 처음이라 감사하게 돌려가며 한 모금씩 하고는

 

   "스님, '상훈사'는 무슨 뜻입니까? 한글로 써 있어서..."

   절집에서 알음알이를 내지마라 했는데....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냥 물어본 말이다.

   "상서러울 '祥' 자에 공 '勳'자입니다. 불교에서 코끼리를 상서로운 동물로 대하지 않습니까? 祥자는 그기서 따왔습니다."

 

    '6개의 상아를 지닌 흰코끼리를 탄 석가모니'가  옆구리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는 마야부인의 태몽 이야기가 알려져 있고, 절간 벽화 등에 보현보살이 코끼리를 타고 있는 것을 왕왕 볼 수 있는데 그런 것을 말하는 듯하다.   

 

   주지 스님이 옆으로 지나가는데 얼굴이 맑다. 몇 년전 사무실로 전기 좀 넣을 수 없냐며 찾아오셨던 분이다. 거리가 워낙 멀어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당시 정부에도 어필을 하곤 했다고 하는데 주민들이 가구를 이루며 사는 곳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고. 하지만 길은 닦여있어 자동차는 들어오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상훈사에서 중촌까지의 회강골은 걸어서 내려오는데 1시간 거리다. 회강골은 좁은 길이지만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몇 년전 차로 와 본 적이 있다. 중간에 버려진 표고막사도 그대로이고 인적없는 외딴집도 여전한데, 다른 점이라면 겨울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산색으로 인해 더 쓸쓸해 보인다는 것이다. 계절이 다르니 느낌도 다른거야 당연하지만 그래서 산비탈 잘 가꾸어진 푸른 차밭이 반갑다. 

 

  산행거리가 짧았던지 중촌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좀 넘었다. 차를 타고 정금리로 내려서니 매화가 여기저기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분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을 지나온 탓인지 따스한 색깔의 홍매가 청매보다 정감이 가고 향기도 더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차를 대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동네 아저씨가 다가오며

 

   "여기는 아직 덜피었고, 저기 다압마을 홍쌍리에 가보쇼. 활짝 피었을거니까"하며 지나간다.

   "아, 예" 

 

  화개나 악양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조금밖에 몰랐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중촌에서 형제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는 것도, 형제봉 아래 임도 사이에 폐사지가 숨어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이대장이 지리산 구석구석 산길을 다 알지는 못할 거라는 헛된 생각을 잠시 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아는 길 다시 가는 것보다는 모르는 길 처음 가는 것이 훨씬 가슴 설레는 일 아니겠는가? 더구나 매화 향기 콧속으로 스미어드는 봄날이니...

 

 

        홍 매

                                             김 영 재                  

 

 

   이런 봄날 꽃이 되어                                

   피어있지 않는다면

   그 꽃 아래 누워서

   탐하지 않는다면

   눈보라

   소름 돋게 건너온

   사랑인들 뜨겁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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