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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13.6.6(목) 교대앞
○ 코스 및 일정 - 07:40 심원마을 - 대소골 - 반야비트 - 반야중봉 - 반야봉 - 임걸령샘 - 긴장등능선 - 한숨약수 - 대소골 - 심원마을 18:15 ○ 산행인원 : 5명 (이재구, 박노욱, 송건주, 김택영, 염기훈) 지리산에 가는 정성으로 다른 일을 했다면 지금 사는 것보다 더 행복했을라나? 도시락 싼다고 마누라는 3시 반쯤 일어나 딸그락 거려야 하고 게다가 새벽이고 밤이고 랑테뷰 장소까지 매번 태워 다녀야 하니 지리산 가는 날은 마누라 노릇하는 것도 쉽지 않겠다. 부산에서 4:45분 출발하는 차와 I/C입구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 5시인데 꼬물닥거리다 보니 3분 늦었다. 여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한영택대리가 빠졌다. "죽소?" "그냥 있어도 10년은 산답니다" 전번 산행 때 "전립선암 수술을 해야 하니 앞으로 산에 동참을 못할 것 같다"는 말끝에 나온 이대장과 한대리간 체념과 초월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화다. 평소 건강하고 누구 못지 않게 산을 잘 타는 한대리가 암에 걸렸다. 특별한 증상이 있은 것은 아닌데 수치가 좀 높아 병원에 갔기에 일찍 발견이 되었고, 수술이 잘 되어 8월이면 계속 동참이 가능할 것 같다니 천만다행이다. 김택영이 낙남정맥 하느라 그동안 빠졌는데 무사히 끝내고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백두 낙동 낙남을 완주을 축하하고... 김택영 낙남 마친 소감 한 마디, "낙남정맥은 전체 거리는 여타 정맥에 비해 좀 짧은 반면 능선의 굴곡이 심해 좀 힘들었다", "산행팀 남녀노소 하나같이 산 잘 타는 사람들이었다"고. 송건주 석 달만이다. 평소 하던 마라톤에 사이클까지 시작했다나. 지리산에 오후 한 때 소나기 예보가 있어 우의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새벽 하늘은 맑기만 하다. 날이 어느 정도 밝아오자 차창 밖은 녹음 짙은 산만 보인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봄꽃들로 희끗희끗하던 산들이었는데 그 꽃들이 이제 열매로 익어가는 때다. 주말에 춘삼이네 농장에 매실이 농익었다고 와서 따가라고 했는데 전화를 못했다. 게으런 농부 넓은 밭에 남새밭 두어 이랑 일구고는 매실나무만 잔득 심어놓았는데 그나마 작년에는 해걸이 한다고 수확이 신통치 않았다나. 늘 그렇지만 이대장의 오래된 자동차는 주인을 닮아서 거침없이 잘 달린다.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도 88고속도로를 따라 인월에서 심원마을에 도착하니 7시 40분이다. 늘 애용하는 '숲속의집'앞에 차를 대니 쥔장 언제 출발했는데 벌써 왔냐며 반긴다. 이번 산행은 대소골의 원시미를 즐기고, 은밀한 비트를 찾아보고, 반야봉과 중봉에서의 전망을 만끽하고, 능선의 한숨약수로 목을 축이는 일정이다. 초입인 대소골은 중봉과 반야봉 그리고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의 북쪽 크고 작은 계곡들이 모여 이루어 물도 많고 깊다. 심원에서 능선을 타고 중봉으로는 몇 번 오르내린 적은 있었지만 대소골 본류를 따라 중봉으로 오르기는 처음이다. 산길을 따라 걷다 중봉 올라가는 능선 갈림길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며 계곡산행을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군데군데 함박꽃이 반긴다. 함박꽃은 산목련이라고도 하는데 목련집안이라 꽃은 비슷한 반면 목련이 잎이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피는 반면, 함박꽃은 잎이 난 후에 꽃이 피는 점이 다르다.
이재구 술잔 따라 산천에 삼 배하고 너럭 바위에 둘러앉아 잔 하나로 이 넘 저 넘 막걸리 두어 순배씩 돌리니 그 맛 알랑가 몰라! 김택영이 그 새벽에 오면서도 찌짐이까지 준비해왔다.
계곡을 따라 이어가면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싶었는데 고요한 호수가 나타나고, 깊은 소(沼)인가 싶었는데 얕은 여울처럼 흐르며, 끊어졌나 했는데 더 큰 물줄기가 이어지는 풍경은 지리산에서나 만날 수 있다. 점입가경[漸入佳境] 이란 이런 것을 이르는 말 아니겠는가! 노자는 도덕경에서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고루 이롭게 하고서도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기꺼이 처하나니, 그런 까닭에 거의 도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고 했고, 맹자는 "흐르는 물이라는 것은 앞에 놓인 구덩이를 하나하나 모두 채우지 않고서는 나아가지 않는다"(流水之爲物也不盈科不行)고 했다. 우쨋든간에 노자나 맹자가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푸른 비취빛 소(沼) 위로 쏟아지는 포말과 가지가지 물줄기와 산들바람에 살랑거리며 흐르는 숲향기를 만났다면 물의 성질을 말하기 전에 지리산에 취해 정신줄부터 먼저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리산에 많이 자생하는데 꽃철이 아니면 못알아봐서 그런지 몰라도 대소골에서 '수수꽃다리'를 세 번이나 만났다. 리라꽃 또는 꽃개회나무, 절향나무를 통칭하는 흔히 라일락이라고 하는 넘이다. 바람에 흩어지는 은근하면서도 진한 향기가 무척 좋은데, 잎을 씹어보면 매우 쓰다고 한다. 시중에 있는 것은 미스김라일락이라고 군정시절에 반출해 나간 개량품종이라고도 하는데 증명할 수는 없다.
계곡이 끝난 지점에서 능선으로 붙으면서 길에서 약간 벗어 난 곳에 시원한 물소리가 난다했더니 배낭을 잠시 벗어놓고 따라오란다. 자그마한 계곡에 폭포라 하기도 거시기 하고, 아니라 하기도 머시기한 간드러진 이끼폭포가 숨어있다. 그 앞을 큰 구상나무가 막고 넘어져 있다. 원시의 삼림이란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이렸다. 작은 물줄기를 받고 있는 물냉이, 떡바위풀과 바위취가 구경꾼들의 장탄식과 어우러진다. 생명이 어우러져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의미는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우쨋든 여름 지리산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계곡산행의 별미다.
중봉비트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중봉이니 나른한 게을음의 엄습앞에서도 모두 여유롭다. 비트 앞 벼랑으로 올라서니 반야봉과 노고단 사이 능선과 너머 뭇 산들이 푸른 꿈을 펼친다. 지리산에 무슨무슨 '대'라고 이름 붙은 곳들은 한결같이 바위를 등지고 전망이 뛰어나며 바위 아래에는 샘이 흐르는 작은 암자가 하나 들어 설만한 공간을 갖추고 있다. 여기도 '대'라는 이름을 가질 만도 하건만 중봉비트라고 하는 걸 보니 대신 빨치산들이 놀았던가. 구상나무 옆 작은 마가목잎이 산들바람에 나부끼더니 휘파람 새, 이 산 저 산에서 청아한 소리로 장단을 맞춘다.
중봉에 도착하니 능금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웠고 구상나무는 사시사철 변함없는 모습인데, 그 앞을 가리며 산철쭉과 병꽃나무가 연분홍으로 단장하고 화사하게 반긴다. 지리산에는 늘 두 개의 계절이 오간다. 산 아래가 봄인가 하면 산위는 지난 계절이 그대로 머물었고, 산아래에 녹음이 짙어지면 능선에는 꽃들이 기지개를 켠다. 중봉은 천상의 화원이랄만큼 여러 넘들이 꽃을 피우는 곳인데 아직 때가 아닌지 곰취 등 취나물 종류의 나물들만 지천으로 널부러져 있다. 심원마을 '숲속의집' 손맛 좋은 여쥔장은 아침에 "반야봉 가시면 곰취며 미역취 등 산나물 천지잉께 좀 캐 오시랑께요. 진짜!" 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심으로는 자기들 밥그릇인데 "뜯어가면 어떻혀" 했을런지도 모른다. 솔직히 몇 종류 말고는 나물인지 독초인지 알 길이 없는지라 함부로 손길이 가지도 않는다.
반야봉에서 노루목으로 하산하여 임걸령 돼지령으로 진행한다. 산에 다니면 가장 많이 듣는 새소리 중 하나가 휘파람새다. 해도 주인공을 작접 보기란 쉽지 않은데 돼지령 부근 능선에서 목젓을 젖히며 신나게 우는 넘을 만났다. 살짝 다가가도 놀라지 않고 열심히 울어 주니 기특하다. 과거 임걸령~돼지평전 부근에 돼지를 제물로 던져넣고 기우제를 지내던 연못(沼)이 있었고, 그 연못 이름을 돝소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의 돼지평전, 돼지령, 대판 등도 그와 연관된 지명이 아닌가 한다고. 해서 대소골은 돝소골에서 유래한 말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한가 본데, 사전을 보니 돝은 돼지의 고어다. 돼지령에서 능선을 타고 대소골로 하산한다. 40분 정도 내려오니 한숨약수다. 능선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숨어있는데 이름이 조금 특이하다. 옛날 동네 사람들이 산을 오르며 여기서 물 한모금 머금으며 한숨 돌린 의미랄까. 누군가가 계속 관리를 하는지 바닥도 물도 맑다. 하산길은 너들겅이 계속되며 희미하게나마 길은 있다 없다를 반복하는데 지리산 어느 곳인들 붙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 빨강리본 대신 노랑리본이 붙어있다. "길 어지러이 가지마라, 내가 오늘 간 흔적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라는 서산대사의 말 뜻을 한 산꾼의 시그널에서도 느낄 수 있다.
대소골쪽으로 내려오니 멀리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숲 속 너들겅길을 앞장 선 이재구 급한 일이 있는지 혼자 바삐 내려간다. 靑山影裏赴誰期 푸른 산 그늘 속으로 누구 기약 있어 바삐 가나 단원 김홍도가 쓴 글에 저런 詩句가 있더라. 근데 계곡에 다 내려오니 이재구가 먼저 내려 간 이유는 ........
옥빛 계곡에서 땀을 씻고 푸근히 쉬다 심원마을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옛날 삼판길 같이 잘 나있다. 도착하니 6시15분 밥때다. 늘 가는 심원마을 '숲속의집' 여쥔장은 성격이 사근사근하고 시원시원하여 여장부 같은데 음식도 깔끔하게 내놓는다. 반면 남쥔장은 촌부 같이 꾀죄죄하고 말수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보는 사람에 따라 도통 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같아 보이지 않는다. 몇 년전 이 집에서 일박 할 때 함께 왔던 한 분이 거나하게 취한 끝에 남쥔장에게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 여보, 이리 함 와 보소, 당신은 근데 이 집에서 하는 역할이 뭐유" 그 양반 씩 웃으며 "나도 이 집에서 하는 일이 있슈"라고 한 에피소드가 기억에 두고두고 남는다. 해발 750m의 심원마을에는 19가구가 민박 등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데, 최근 국공측에서 심원마을을 완전히 폐쇄하고 주민들을 이주하게 할 모양이다. 장사가 안되어 보상을 받고 떠나기를 원하는 주민들도 있고, '숲속의집' 처럼 장사가 잘되어 버틸 때까정 버텨보겠다는 집도 있는 가 보다. 여쥔장 말에 따르자면, 주민들을 모두 이주 시키고 나면 달궁에서 성삼재를 거쳐 구례로 이어지는 지리산 관통도로도 폐쇄할 것이라는데, 문제는 그 조건으로 물건너 간 것으로 추측된 케이블카 설치가 은밀하게 다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1군데라는 말이 있다며 여쥔장 왈 "물론 힘없는 구례 쪽은 아니겠지요잉." 지리산 보전을 이미 수백 억 들여 닦아놓은 도로를 폐쇄하고 또 수백 억을 들여 주민을 이주까지 시키면서 다른 곳에는 케이블카를 허가하려는 이률배반적인 짓을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것이 산청이나 함양 등 지리산 다른 쪽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나중에 다시 지리산 관통도로의 문을 여는 꼼수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것이라. 그건 그렇고 뒷풀이로 소주 맥주, 옻백숙 엉개백숙 한 마리씩, 엉개 죽 한 그릇에 산나물, 특히 뜨끈한 옻국물 시원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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