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모음

지리산 폭포수골 산행기

by 하얀 사랑 2013. 5. 16.

지리산 뱀사골 수달래와 심마니능선
[염기훈 2013/05/16 14:56]

○ 일시 : 2013.5.12 05:00
○ 코스 및 일정 : 07:40 반선교 - 뱀사골 - 폭포수골 - 박영발비트 - 묘향암 - 중봉 - 심마니샘 -
                          심마니능선 -반선교 20:10 (12시간30분)
○ 산행인원 : 4명 (이재구 한영택 박노욱 염기훈)

 

 

   지리산 입산금지기간을 피하여 3월은 삼봉산과 지리산 둘레길을 순례하였고 4월에는 비로인해 건너뛰었다. 그러다보니 어린아이 소풍날 기다리듯  5월이 기다려졌는데 그사이 산은 연초록 빛으로 물들었다.  

  이번 산행은 뱀사골을 거슬러 올라가다 간장소를 지나서 폭포수골로 진입, 반야봉 아래 묘향대를 거쳐 중봉에서 심마니능선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반야중봉에서 시작되어 반선까지 뻗은 심마니능선 그리고 토끼봉과 명선봉 사이로 흐르는 장대한 계곡이 뱀사골이다. 아름다운 소들이 줄을 잇고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고 하여 뱀사골이라고 하는 갑는데,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들이 난무하니 생략하고..

 지리산 계곡 중에서도 길이로 한이름 하는 반면, 요룡대 탁룡소 제승대 간장소 등의 명소들이 많기로 손가락에 꼽힌다. 심마니능선 또한 지리산에서 능선의 길이로 산꾼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으니 이번 산길은 한마디로 장구한 계곡을 만나고 장대한 능선을 거치는 산행이다. 도중에 폭포수골의 비경도 맛보고 반야봉 아래 묘향암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두근거리는 산행이 될 것같다. 

 

   시작은 반선(伴仙)이다. 7:40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곧바로 산길을 나선다.  

  반선 국공관리사무소를 조금 지나면 와운마을 입구까지 계곡을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산길 멀리 가기 힘든 사람들이나 가벼운 산책으로 와운마을 천년송까지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천천히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적당하다.  

   비취빛 깊은 소(沼)로 가지 드리운 붉은 수달래가 산하를 물들이는 5월의 지리산 계곡으로 들어간다. 뱀사골 수달래를 찍기 위해 출사를 나온 사진동호회 회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얹어놓고 삼삼오오 아침빛이 좋은 때를 기다리고 있고, 몇몇은 여기저기 수달래를 찾아 옮겨다니기도 한다.

  계곡을 따라 2㎞ 정도 올라가면 계곡 건너편에 ‘요룡대’의  모습이 보인다.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것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어서 용이 목욕을 하고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탁용소’, 이무기가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뱀소’, 호리병 모양의 ‘병소’까지 만날 수 있고, 이어 석벽 사이로 개울이 흐르는 ‘병풍소’가 나온다.

  윤판나물

   제승대

   1,300여년전 송림사 정진스님이 중생들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제(祭)를 올렸던 곳이라 하여 제승대라고 부른다. 뱀사골에서도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간장소
   간장소는 옛날 영호남 상인들이 물물교환을 하던 화개재에서 2.7km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소(沼)다. 옛날 소금장수들이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화개재를 넘어오다 소금짐이 이 소에 빠져 간장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이 소의 물을 마시면 간장까지 시원해 진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져 간장소라고 한단다. 반선에서 간장소까지 2시간반 걸렸다. 평지를 걷는 것처럼 길이 좋고 계곡이 수려하다. 
  반야봉과 토끼봉 명선봉 심마니능선의 거대한 산군들이 뱀사골을 감싸고 있어 계곡이 길고 숲이 울창하며 물이 많은 만큼 여름산행시에는 각별히 주의해야 할 곳이다. 비가오면 계곡으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뱀사골로 처음 지리산에 입문하며 지리산을 사랑했던 시인 고정희가 그로부터 6년후 1991년 6월 호우로 순식간에 불어난 물로 익사한 곳이 뱀사골이다.         

  구슬붕이

 

   신록의 5월은 산을 연초록으로 살갑게 물들이고  겨울을 난 숲 아래로 현호색 산괴불 제비꽃 구슬붕이 등이 꽃들을 피워내고 있다. 계곡사이 바위틈에 물맞은 바위취가 싱그럽게 피어나고 괭이눈이 노란 꽃대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높은 산 위는 산아래의 봄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뱀사골에서 폭포수골로 접어든다.  

 

  폭포수골

  폭포수골은 반야봉과 중봉의 사이에서 뱀사골로 흘러드는 계곡으로 �p� �p� 게 작은 폭포들과 소(沼)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작은 폭포들 아래로 소들은 비취빛으로 그 속까지 맑게 빛나고, 겨우내 말라있던 이끼낀 바위들 위로 여름이 오고 수분이 충분히 공급되면 이끼가 피어나 푸른 계곡를 자랑할 것 같다. 이토록 울창한 숲과 맑고 깨끗한 물이 넘쳐나게 흐르는 곳에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하고도 지리산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견물생심(見水生心)! 여기까지 온다고 땀을 흘렸으니 한 번 담그고 가자는 중론이 있는가 하면 이 맑은 물을 어찌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는 반론도 있다. 이럴 때 써먹을 수 있는 수법이 합리화다!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 "더러운 것도 없으며, 깨끗한 것도 없으니..." 반야심경의 구절을 내세우며 옷을 주섬주섬 벗어던진다. 산위까지는 아직 녹음이 채 다다르지 않은 봄이라 시린 물 속에서 발이 빠지는 듯한 아픔을 경험하는 알탕의 행복감을 잠시 맛본다.  
 

  괭이눈  

  족두리풀

  반야 박영발 빨치산 비트
  폭포수골로 따라 올라가다 상류부 쯤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좌측으로 능선으로 5분정도 올라가니 '박영발 비트'라고 알려진 빨치산 비트가 있다. 개구멍같은 작은 바위 틈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동굴처럼 생긴 안으로 몇 사람이 운신할 만한 넓이의 공간이 있고 그 안쪽으로 또다른 은신처가 있다. 빨치산들이 라디오를 개조 북한 단파방송을 수신하기 위해 사용했던 삐삐선이 흩어져 있어 이곳이 지휘본부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대장이 원혼을 위로하는 술잔을 올린다. 비트 안에서 후래쉬를 켜고 여기저기 살펴보다 사다리를 타고 되돌아 나온다.
 
  이태의 『남부군』에 박영발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게 나오는데, 경북 봉화태생으로 학력이 전무한 대신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던 토목노동자 출신인 그의 직책은 전남도당위원장과 5지구당 부위원장이었고, 깡마르고 약간 큰 키에 몸이 몹씨 허약해서 걷다가 가끔 쓰러져 숨을 가다듬고는 다시 일어나는 정신력 하나로 버티는 사나이였다고 한다. 남부군 총사령관인 이현상과는 대립관계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남로당계 계열이지만  박영발이 '기본출신'(노동자 농민 출신을 말함)의 친김일성 성향이 강한 교조주의자였지만 이현상 등과같은 중류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하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국내파 공산주위자들과 그 성분이 판이할 뿐 아니라 그들을 '감상적 인텔리젠트'라고 경시하던 흔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빗점골에서의 이현상의 최후는 북의 밀명을 받은 박영발과의 권력투쟁의 결과일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쨋든 54년 1월 중 박영발은 배암사골에서 최후를 마친다. 토벌대에게 포위되자 탈출을 단념하고 권총으로 자결해버렸다고.
 

 
 

    하늘이 숨긴 땅 묘향대

   묘향대는 반야중봉을 뒤로하고 앞으로 토끼봉과 명선봉을 마주하고 있는 작은 암자다. 지리산에는 상무주암 문수암 상선암 우번암같이 깊은 산중 암자가 더러 있지만 묘향암은 그중에서도 접근로와 아주 떨어져 있다. 반야봉 아래 있어 가장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곳이 노고단 아래 성삼재이거나 반선이다. 맨몸으로 와도 너댓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라 전기도 없다. 큰 마음 먹지 않으면 길도 쉽게 찾을 수도 없다. 반야 중봉에서 내려오는 방법이 있는데 비법정로다. 이대장은 폭포수골에서 묘향암으로 가는 이 길이 노루목에서 가로질러 오는 길이 있다고 한다. 묘향암 절마당에 들어서니 스님이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여기 휴대폰 잘 됩니다. 억지로 절에 오지는 말고 인연이 있으면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로 보아 묘향암을 찾고자 하는 어느 사람과의 이야기같다.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고 나와 스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이재구 : 스님 언제부터 이곳에 계셨습니까?

  스님 : 2004년도부터 있었습니다.        
  나 : 그럼 스님께서 호림스님 맞으십니까?
  스님 : 예
 

   예전에 '하늘이 숨긴 땅'이란 책에서 묘향암을 처음 알았는데 암주가 '호림스님'이라 했다. 장좌불와도 했다고 들었는데  2009.8.8 반야중봉에서 함박골 이끼바위로 내려가며 스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모습과는 달라보여 다른 분인가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여쭤본 것이다. 그때 사진을 찍자니까 완곡하게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기꺼이 포즈를 취해 준다. 환갑이 지난 나이임에도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이대장이 문종이에 붓으로 써여있던 '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구절이 아직 있는지 가서 방문을 열어본다. 應無所住 而生其心과 더불어 금강경의 핵심구절이다.     

  조금 있으려니 반야봉에서 묘향대로 길없는 산사면을 타고 등산객들이 몇 내려온다. 스님 말씀으로 극성산꾼들이 간혹 있는데 지난 정월 초하룻날 아침 묘향암 눈쌓인 마당에 발자국 자취만 남아있어 걱정스런 마음에 따라 가봤더니 눈속에 길을 잘 찾아 내려갔더라고 한다. 아마 새해 일출을 보고 내려간것 같다고... 반야봉 일대는 구상나무와 주목이 많이 자라고 있는데 올라오다 보니 키 큰 구상나무들이 많이 넘어져 있었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에 자라는 특산종인데 온난화로 2060년경이면 멸종할지도 모를거라 한다. 스님 말씀으로는 지난 해 태풍 볼라밴 때 반야봉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는데 그때 피해를 입은 것들이라 한다.   

  묘향대 우물  

   호림스님과 함께

   수행이란 세상과 한 발 떨어져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인간이란 관계망 속에서 살기 때문에 사회생활이나 가족관계를 유지하면서는 수행이란 것이 사실상 어렵다. 승가란 그래서 출가하여 공동체를 이루어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고, 외진 곳에 홀로 나무 아래 앉아 선정에 드는 것이다. 꽃이 피면 향기는 저절로 퍼지는 것이라 했다. 수행자는「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숫타니파타의 경구를 되새기며, 백척간두에 진일보하는  마음 물러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스님과 '하늘이 숨긴 땅'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 합장하고 중봉으로 향한다.   

 

  14:30 중봉으로 올라가니 위에서 남녀 한쌍이 묘향대 쪽으로 내려오며 심마니능선 가는 방향이냐고 묻는다. 이대장이 길을 알려주자 되돌아 올라간다. 중봉에 서니 천왕봉과 주능선이 시원하게 하늘과 맞닿아 있다. 주능선은 아직 춘래불사춘이다. 허나 계절은 산아래에서부터 연두색 봄소식을 안고 부지런히 산정으로 내닿는다.  

   심마니 능선

   만복대에 서서 천왕봉쪽으로 바라보면 주능선을 가리며 가장 먼저 보이는 긴 능선이 심마니능선이다. 능선이 길고 험하여 약초꾼 아니면 다니기 힘들기에 심마니능선이란 이름이 붙었을 성으로 짐작된다. 심마니능선은 반야중봉에서 뻗어내려 반선까지인데 중간에 왼편으로 달궁마을 쟁기소로 내려서는 능선과 갈라져 반선쪽으로 이어진다.  

   중봉을 출발하여 내려서다 심마니샘에 잠시들러 물 한모금으로 입을 적시고 반선으로 향하니 오후 4시다. 심마니능선은 길고 험하기 때문에 산꾼들이 많이 다니지 않고 태풍으로 여기저기 나무들이 넘어져 산길을 가로막고 있는 곳이 많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산길 양쪽 산사면이 칼날처럼 날카로눈 곳이 많고 하산길인데도 오르내림이 심하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애매한 갈림길들이 더러 있어 엉뚱한 곳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 한 시간을 오르내리락 하니 망봉(1,379m)이다. 물 한모금 입을 헹구고 나니 땀이 가신다. 지도를 보니 반선까지 길이 장구하다.    

   지리산에서 종주산행 외에는 오르내리락 거리는 산행은 드물다. 대부분 쭉 올라가서 쭉 내려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마니 능선은 능선이 길어 대간산행하는 기분이다. 중봉에서 출발할 때가 오후 4시 조금 전이었는데  어느듯 땅거미가 뱀사골 계곡으로 지고 있다. 산길에 넘어진 나무를 피해 돌아가고 넘어가느라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아침에 뱀사골과 폭포수골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끈 탓도 있다. 오른편 계곡 아래로 와운마을이 스쳐 거의 다왔다고 생각할 때쯤 해는 저물고 날은 점차 어두워진다. 헤드랜튼을 꺼내 머리에 쓴다. 마지막 봉우리가 하나 나타나자 이대장이 편안한 길을 찾아 우측으로 돌아나간다. 길이 없다. 산에서 약간의 지름길을 찾다 길을 잃는 경험을 대간과 정맥을 해 본 터라 경사진 잡목을 헤치고 나가는데 식은 땀도 나고 다리도 풀리기 시작한다. 날이 어두우니 마음도 급해지기도 하고...다행히도 길을 찾아 반선교 앞에 다다르니 저녁 8시10분이다.       

   뱀사골과 심마니능선이 길기는 하지만 어차피 한 번 해야할 코스니 약간 힘들긴 했지만 즐거운 산행이 되었다. 지리산 어느 계곡이 아름답지 않겠냐만 뱀사골의 고즈넉한 산길과 수달래, 폭포수골의 맑고 아기자기한 물줄기, 신록의 5월에 핀 작은 꽃들, 하늘도 숨긴 땅인 묘향대가 없었다면 산행의 향기가 덜했을 것이고, 심마니능선의 작은 심마니샘이 아니었다면 목마름은 더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산에 가야할 이유는 그런 사소한 것에 있지 아니하겠는가!  신록의 5월 산행은 12시산 30분 그렇게 마무리 했다.   

              사 랑        
                                       고정희

                          

            월정사 부처님처럼 마음을 비우고 잠드는 밤에

            마음 저켠 벌판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여리게 혹은 강하게 비가 내렸습니다

            

            눈물보다 투명한 그 빗방울들은 삽시간에 하늘의 절반을 적시고

            오대산 구상나무 숲을 적시고 우수수 우수수수수

            부처님 발목 밑에 내려와 잠들지 못하는 새벽풀잎 옆에

            오랑캐꽃으로 피었습니다 은방울꽃으로 피었습니다

            초롱꽃으로 피었습니다  바늘꽃,두루미꽃으로 피었습니다

            사랑꽃,이슬꽃으로 피었습니다


            아.......신록으로 꽉 찬 오월 언덕에서

            햇빛 묻은 미루나무 몇 그루

            아름다운 이별처럼 손 흔들고 있었습니다 

 

'지리산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내원골  (0) 2013.07.18
지리산 대소골  (0) 2013.07.15
폭포수골&심마니능선  (0) 2013.05.12
함양 삼봉산 산행기  (0) 2013.03.18
지리산 달궁옛길과 황령암지를 찾아서   (0) 2013.02.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