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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모음

함양 삼봉산 산행기

by 하얀 사랑 2013. 3. 18.

삼봉산 그리고 지리산 둘레길
[염기훈 2013/03/15 16:25]


○ 일시 : 2013. 3. 9 (토) 

○ 코스 및 일정 : 백장공원 07:35 - 백장암 - 서진암 - 금강대(암) - 서룡산 - 투구봉 - 삼봉산 - 등구재 - 지리산둘레길 -  백장공원 18:00

○ 산행인원 : 5명 (이재구, 박노욱, 송건주, 한영택, 염기훈)

  

   "지리산을 바라보며 걷는 환상적인 산길, 황홀한 조망을 자랑하지만 구도자마냥 숨어 있는 三寺 순례"가 이번 산행의 테마다. 지리산 입산금지기간 중 지리산을 들어가지 못하니 삼봉산 능선 먼 발치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는 코스를 택한 것이다. 2007.1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라는 오도재에서 출발하여 삼봉산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등구재로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반대편인 백장암 쪽에서 시작하여 서룡산과 투구봉을 거쳐 삼봉산에서 등구재로 하산하여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백장암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도중의 서진암과 금강대암에서 느껴보는 지리산 풍광은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다른 재미를 선사하리라.

 

 

 

 

 

 

 

 

 

 

 

 

 

 

 

 

 

 

 

   햇살 스며드는 지리 삼정산 골짜기를 마주하며 백장암 마당에서의 그윽한 아침 풍경

 

  실상사 백장암(百丈庵)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는 말로 불교에 노동을 도입한 百丈禪師의 법명을 따서 지은 절이다. 홍척대사가 구산선문 중 하나인 실상사를 창건할 때 같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1468년(세조 14년) 실상사 화재로 인해 약 200년간 백장암이 실상사의 중심역할을 했다고 한다. 국보 10호인 삼층석탑과 보물인 석등을 간직한 신라의 고찰이다. 

 

   2006.5월말에 회사 산악회에서 금대산에 등산왔다 백장암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당시 대웅전 건물이 없었고 탑과 석등만이 있었는데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그때 요사체 마루에 걸터 앉으니 대구에서 왔다는 서글하게 생긴 젊은 보살님이 입담도 좋았는데 덥다며 수박을 설어 내주고 커피까지 타주는 바람에 즐거운 마음으로 보시하고 온 기억이 새롭다. 그 보살님을 '수박보살'이라 이름붙였고 모두 기억하고 있었더랬는데, 오늘은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절집은 적막하여 비구니 스님 한 분 법당에 들어가는 모습만 띌 뿐 수박보살은 고사하고 커피보살도 얼른거리지 않는다. 

 

  백장암 3층석탑과 석등

 

  백장암 3층석탑이 국보로 지정된 이유는 보살상과 신중상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인상 등이 탑신에 조각되어 있고, 1, 2층 옥개석 밑면에는 앙련(仰蓮)을, 3층 옥개석에는 삼존상(三尊像)을 새겼으며 기단부와 탑신 아래에는 목조난간 모양의 조각을 하는 등 다른 탑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화려한 장식에 있을 것이다. 즉 탑을 조성하면서 최상의 공덕과 정성을 베풀었다는 말이 되겠다. 또 하나는 탑 상륜부의 온전함이다. 대개 신라시대의 대부분의 탑들이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실상사 탑과 백장암 탑의 상륜부가 원형을 유지함으로써 실상사와 백장암 자리가 명당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고 있다.  석등 또한 걸작품인데 자세히 뜯어보면 앙련과 복련 얇은 꽃잎 안에 동그란 꽃술에 볼록볼록 솟은 네 장의 꽃입이 예쁘게 새겨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띠게 한다. 특히 석등 상대석 난간무늬는 신라시대 목조건축의 양식을 알려주는 소중한 자료라고 한다.

 

  탑 앞에는 4기의 부도탑이 굽은 소나무 사이로 나란히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 맷돌 3개와 잔돌 몇 개가 포개져 부도탑 흉내를 내며 적멸에 들었다. 이 스님네들은 전생에 무슨 공덕으로 지리산 아름다운 자락을 차지하고 계시며 맷돌은 또 무슨 인연으로 그 곁을 지킬까.

 

 

  전체적으로 탑의 비례가 안정감이 없어보이는데 2층과 3층의 탑신 크기가 비슷한 점 때문이기도 하고, 하대갑석에 기단부가 없이 1층 탑신이 그냥 얹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알아보니 기단부가 없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2000년 7월경 원광대박물관팀이 실상사 문화재 발굴조사를 하면서 백장암 3층석탑 주변도 함께 발굴했는데 이때 석탑 주변에 묻혀있던 팔부신장상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진 기단부 부재 6점을 찾아냈다고 한다. 원광대 박물관팀은 이 부재들을 '주인없는 동산(動山)'으로 관리당국에 신고하고 사찰측에는 알리지도 않고 대학박물관으로 유출해 갔다고 한다. 사찰측에서 가지고 있던 부재 3점과 함께... "법적으로 땅속에서 나온 것이니 국가소유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가귀속 절차만 끝내고 원광대가 위탁관리를 맡은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원래 있던 것을 제자리에 돌려 놓는 것은 비단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뿐만 아니라 이런 경우도 당연히 해당되는 것 아닌가? 백장암 3층 석탑이 기단부를 갖춘 온전한 모습으로 제자리에 서 있기를 바란다.

 

 

  막 쏟아지컩� 컩� � 받은 주악천인들이 악기를 연주하여 세상에 아름다운 음악공양을 시작한다.  

 

 


  백장암에서 나와 금강대암으로 가다 방향을 서진암으로 바꾼다. 서진암은 당초 계획으로는 맨 나중 둘레길 끝나는 시점에 산으로 도로 올라와 서진암에 들러고 백장암으로 돌아나가는 것이었으나  아무래도 서진암에 들렀다 금강대암으로 가는 것이 가까울 것 같아 잠시 계획을 변경한다.  
 

 

 

   瑞眞庵(서진암)에 도착하니 스님(庵主)는 간데 없고 "급한 분은 연락하라는 것과 원하는 분은 적어놓고 가면 축원을 해드리겠다"는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가 붙어있다. 서진암은 물맛이 특히 좋다고 하는데 옆 벽에는 매달려 말라 쪼그라드는 곶감이 아직도 남아있고 앞 벽면에 걸린 목탁은 쳐보니 소리가 맑다. 문 옆으로 조그만 나무판에 날렵한 글씨로 쓴 싯귀가 눈에 들어온다. 香牌 (포향패)다. 이재구가 쭝얼쭝얼 읽는다.

 

  金仙不見固不惜  부처는 못뵈어도 참으로 아쉬울 것 없지만

  庵主掩扉且奚適  주인장은 사립문 닫고 또 어딜 갔나

  中白槌歸 포향(布行)을 나갔다면 가까이 있다 돌아올 것이나 

  客非知者何所覿 객이 그것을 알지 못하니 어디서 만나볼 것인가

 

   香(포향)은 곧 포행(布行)이니 좌선 중에 졸음을 쫓거나 심신을 맑게 하기 위하여 천천히 걸으면서 선을 행하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운동겸 산책정도가 되겠고, 中(구중)은 화살이 닿는 가까운 거리를 말하며, 白槌(백퇴)는 문수보살이 白槌(백퇴, 즉 망치)로 세 번 친 후 세존께 법을 청했다는 것에서 유래하는데, 포향(포행)을 나갔다면 멀리가지 않았을 터이니 종을 치면 그 소리에 암주가 돌아오니 않을까 마는 나그네 어디서 그를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뜻이리라. 풍광 그윽한 암자를 찾아나선 나그네는 굳이 절집에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사립문이 닫긴 것을 보고 암주가 어디 포행 나갔나 하고 궁금해 하면서도 면식도 없는 그를 만날 딱히 이유도 없다 느낌이다. 해서 시가 고서화를 보며 화제(畵題)를 읽는 듯 담백하다.

 

   주인장 없는 암자에 서성거리는 우리같은 객들을 위해 포향패를 걸어두었겠지만 이로 인해 마치 주인장과 오래 이야기하다 오는 기분이 든다.     
 

 

  서진암 마당에 서서 바라보니 바로 앞으로 산내면 마을 위로 삼정산이 다가오고 멀리로는 반야봉과 성삼재가 펼쳐진다. 그러나 하늘이 맑음에도 황사현상 때문인지 시야가 깨끗하지 못하다. 서쪽으로부터 흐린 기운이 지리산을 가리니 주능선은 뿌옅게 물든다.     

 


  서진암에서 돌아나와 산아래로 내려서다 금강대암으로 오른다. 금강대암은 양철지붕이 바람에 날아간 채 벗겨져 있고 방문은 잠겨있다. 쌓여있는 장작은 여러 해를 묵은 듯 나무색이 바랬고 쌀독은 비었고 된장 간장독도 사람의 손길이 거친 흔적이 오래 되었다. 금강대암은 전기도 없는 곳이라 손 보기도 쉽지 않을 듯 수행승이 기거하기에는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로 할 것 같다.    

 

  금강대암 앞 바위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덕두봉이 눈 아래로 환하다.

  만복대에서 이어지는 지리산 줄기는 덕두봉에서 마감을 한다.

 

 

  금강대암에서 계곡을 타고 조금 올라오니 서룡산이다. 이 능선이 삼봉산으로 이어지며 오도재까지 연결된다.  조금 더 가 투구봉에서 점심을 하고나니 햇살이 따사롭다. 고려말 인월 운봉지역에 왜구가 창궐할 때 이성계가 이 동네에서 좀 활약을 했는데 투구봉은 그 때 이성계가 깃발을 꼿은 전설이 있다나. 간단히 오침을 하고 삼봉산으로 간다.

 

   14:20 삼봉산

 

   삼봉산은 이 능선에서 다른 봉우리보다 약간 더 솟아있다. 산에 오면 산길에 가장 색깔이 없는 계절이 3월이다. 숲에는 녹음이 없고 꽃이 없고 때로는 눈조차 남아있지 않는 시기다. 비가 없어 대기는 건조하지만 산길은 질퍽거리기 일쑤며 겨울처럼 맑은 하늘도 만나기 어렵다. 삼봉산에 도착하니 바람이 많이 불고 뿌연 황사로 지리산 천왕봉 등 주능선이 희미하다. 지리산 주능선을 멀리서 만끽하려던 희망은 실루엣처리된 아련한 능선으로 만족하고 등구재로 하산한다. 삼봉산에서 등구재로 내려서는 길은 1시간20분, 등구재를 지나면 금대산과 백운산이다.

 

   등구재

 

   등구재란 거북등처럼 생긴 고개라고. 함양 창원마을과 남원 상황마을을 넘던 옛길이 지금은 인월-금계구간 지리산 둘레길이 나 있다.   

 

 

  등구재에서 조금 내려오니 잘 지은 주막집이 있다. 1박2일 멤버들 사진이 있는 것보니 여기서 촬영한 모양이다. 날씨가 몹씨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입술이 바싹 타 시원한 맥주 생각이 간절했는데 한 캔씩 마시고 나니 갈증이 가신다. 한 캔씩 더 마시니 주인 아주머니는 파전 하나와 나물을 서비스로 계산에서 뺀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주막에 들러 피곤을 풀면서 벽이며 천장에도 저마다 한마디씩 멘트를 써놓았다. 그중 재미있는 몇가지!

 

   "대박나자, 제발! ♡현영아 ♡ 사랑한다 -우도 오빠 -,  "가희, 2013년에는 좋은 인연 만나!   청래 민규 영래 건강하게 자라다오! 지리산 완전정복, 鳥卽擇木 木豈能擇鳥(새가 나무를 가려 앉지, 나무가 어찌 새를 택하랴), 지리산을 마음에 담고, 군대 가기전, 태백 최준혁 애인구함, 애라야 시집가라! 똘아이 삼인방 대구에서 왔다감, 여름에 다시 오자! 고생많았어요 건강하삼, 정호♡다희...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서 다시오자! 둘레길 1탄 형노♡지영 백년해로 로드, 오늘도 참는다."  

   

 

  지리산길(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개도(전북, 전남, 경남), 5개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읍면 120여개 마을을 잇는 274km 22구간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곳곳에 걸쳐 있는 옛길,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농로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한다. 둘레길은 이번이 처음인데 지자체에서 둘레길 표시를 잘 해놓아 어느방향으로 갈지 길을 헤맬 염려는 없겠다. 주말이라 그런지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과 연인들도 더러 있다. 어디서나 사람이 끓으면 장사꾼들이 모이게 마련이라 곳곳에 비닐하우스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데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다. 저수지 앞 음식점은 젊은 부부가 하는데  책을 읽다 웃으며 인사를 한다. 조금 앞에서 배를 채운 탓에 미안한 마음으로 그냥 지나친다. 둘레길 주변에는 고사리 곳곳이 고사리 밭이다. 이곳을 지나다보니 산에만 다니는 것보다 둘레길을 느리게 걸으며 잘 몰랐던 산주변의 인심을 즐겨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산행은 겨울복장을 하고 왔는데 오늘 산위는 햇살이 뜨거웠고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타고 버들강아지도 가지 끝에 물을 올렸다. 

 

 

   17:32 둘레길을 쭉 따라오니 아침에 들렀던 서진암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당초 계획은 여기서 서진암으로 올라가 백장암으로 내려갈 계획이었는데 10시간 정도 걸은 상태라 다시 서진암 쪽으로 올라가기가 힘겹다. 해서 그냥 둘레길 따라 아침에 차를 대논 백장공원으로 가기로 한다.

 

 

   갈림길에서 내려가니 앞에 서진암에서 내려오신 비구니 스님 두 분이 걸어가고 있는데, 바랑도 없고 손에 든 것도 없는 빈몸이 한가로워 보인다. 이렇듯 작은 것조차 지니지 않는 것이 무소유를 행하는 마음이라. 

 

  도로까지 내려와 아침에 차를 대논 곳으로 걸어가니 다리가 좀 피곤하다. 이대장이 종종걸음으로 앞서가다 차를 히치하이크하려니 산도적같이 생긴 넘에게 차를 태워줄리 만무, 모두 지나치는데 기어코 승용차 한 대를 세워 타고 갔다. 마음씨 좋게 생긴 여성운전자에 혼자였다는데... 산모퉁이를 도니 바로 200m도 못가 차가 있더라는.....

 

  이번 삼봉산 산행은 지리산 산불방지 입산금지기간이기도 하고, 이대장이 전번 산행시에 "삼봉산 코스가 좋으니 한 번 하자"는 말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리산의 바깥을 더듬는 것이니 그 또한 의미가 없을 수 없다. 백장암 삼층석탑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암주(庵主)없는 서진암에서 반야봉을 배경으로 뻗어내린 삼정산이 골격 있는 산임을 보았고, 주인마저 떠난 금강대암에서는 만복대에서 이어지는 바래봉 능선의 끝자락인 덕두봉의 넉넉함을 느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한자리에 두어 시간 서성이며 더 음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구와 싸우던 이성계가 깃발을 꼿았다던 투구봉에서의 달콤한 오침, 온 함양 땅이 눈아래로 펼쳐지는 삼봉산과 그 아래 등구재에서 이어지는 둘레길의 아기자기한 정취 등 잔설마저 떠나보낸 3월의 지리산 주변은 이제 봄맞이 채비에 한창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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