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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시 : 2013.7.6 07:40 ~ 18:10 ○ 산행장소 : 쌍계사 07:40 ~ 내원골 ~ 내원재 ~ 내원골 ~ 쌍계사 18:10 ○ 산행인원 : 5명 (이재구, 박노욱, 김택영, 송건주, 염기훈)
한 명의 지리산꾼과 네 명의 덜렁이들이 또 지리산으로 나섰다. 이재구, 몇 군데 짚어주며 가고 싶은 곳 택하라 했는데 내원골 안가봤다며 그리로 가자고 했지만 내심 쉬엄쉬엄 소은암 고령암지 등 휘 둘러보고 골짜기에서 놀고 싶은 것이 이유였다. 내원골은 쌍계사 안쪽 계곡으로서 초입에 쌍계사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지나다가 봐서는 잘 알 수 없는 곳이다. 7:40 쌍계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른편 마을 동네 안길을 따라 올라간다. 마을 뒤 텃밭에서 깻잎이며 푸성귀를 따 오던 아주머니 한 분 구수한 남도 사투리로 "어매, 이리가먼 산길이 있간디 등산 가시는 가요?"하고 묻는다. 이 길은 동네 분들도 잘 모르는 갑다하고 가는데 "나중에 내려 오시면 우리 식당으로 오시랑께요" 하는 소리가 뒷전에 울린다.
당초 산행예정지도
변경된 산행답사지도
논밭을 몇 개 가로질러 쌍계사 뒤편 새로 신축공사 현장 뒷편 절개지를 따라 넘어가니 내원골이다. 내원골을 따라 시멘트 포장길이 나오고 계곡에는 며칠간 내린 장맛비로 수량이 장난이 아니다. 계곡 오른편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며 계곡을 건너려다 도로 내려와 왼편 산길을 따라 계곡산행을 시작한다.
첫번 째 계곡을 건너야 하는 지점에서 이대장이 등산화와 양말를 주섬주섬 벗고 바지를 걷어올리더니 양쪽 등산화 끈을 서로 묶어 어깨에 걸치고서는 물을 가르며 성큼성큼 건너가 버린다. 나머지 넘들 쭈볏쭈볏 엉거주춤 뒤뚱뒤뚱 계곡 아래 위로 왔다갔다 얕은 곳 찾는 꼴이 물 만난 강아지처럼 어쩔 줄을 모른다. 언제 따라 왔는지 스님 한 분이 뒷편에 서 있더니 신발이며 바지며 벗어들고는 아래 얕다 싶은 곳으로 냉큼 건너가 버린다. 그곳도 물살이며 깊이가 장난 아닌데 박노욱은 그리로 건너고 나도 아랫쪽 위쪽 왔다갔다 하다 결국 건넜는데....그냥 성큼성큼 냅다 건너는 것이 상책인데 맞닥뜨리면 잘 안되는지라....빠졌다.
계곡을 바로 건넌 자리 눈 앞 바위에 조그만 감실을 파고 글을 써 놓았는데, 유토피아(청학동)으로 들어가는 패스워드라나! 사진으로 찍고봐도 알아먹지 못하겠다. 먹으로 쓴 걸로 봐서 그리 오래 되지는 않은 듯 길게 봐줘도 왜정 때쯤 아닐까 싶어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통과
내원골로 흘러드는 지류도 장맛비로 때를 만난 것처럼 용틀임하듯 굽이굽이 긴 물줄기를 흘려보내는데 곡선미가 낙차 큰 직류의 폭포수보다 더 청량감을 준다. 우연히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내원수행처
쌍계사에서 한 시간 반쯤 올라오니 내원수행처다. 세 채의 집이 있는데 스님이나 처사들이 수행을 위해 머무는 곳이라 한다. 아래에서 물을 건넜던 스님도 여기로 올라오신 분 같다.
근데 계곡 물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이런 곳에서 잘 수행이 될까? 나 같으면 저런 물소리를 한 시간 계속 듣고 있으면 환장해버릴 것 같고, 더구나 고요한 곳에서 정신을 집중해야 할 수행자의 정신이 오히려 혼미해 지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중산리 계곡 근처 민박집에서 하룻밤 자다가 창가로 울려오는 우렁찬 물소리에 밤새 뜬 눈으로 지샌 적이 있어 하는 말이다.
그러나 득음을 하기 위해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 시끄러운 폭포 아래에서 피를 토하며 연습 하듯이 수행자도 이런 환경을 택해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일 것이라. 지극히 고요한 것과 지극히 시끄러운 것은 칼의 양날처럼 매 한 몸통이라. 3조 승찬조사는 信心銘에서 "지극한 도는 어려운 것이 없으니 다만 가려서 선택하지 말라(至道無難 唯嫌揀擇)"고 했으니 괜시리 이러니저러니 나의 지레짐작만으로는 오히려 고요한 산골을 어지럽힐 뿐이다.
내원 수행처 계곡 앞에서 다래 열매 보라며 박노욱이 부른다. 지리산이 아무리 깊다 해도 다래 열매를 만나기는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때도 맞추어야 하지만 하고 많은 다래덩굴 중에서 열매를 본 적이 거의 없기에 그렇다.
내원골은 쌍계사 뒤편 계곡이지만 안으로 들어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주위 능선도 높다. 지리산 주능선인 영신봉에서 삼신봉과 악양의 형제봉을 거쳐 악양 섬진강가까지 뻗어나가는 산줄기가 중간에 몇 개의 작은 가지를 쳐 내원골을 만들었다. 아주 먼 옛날 화개천과 내원골 두 계곡이 만나는 곳에 절을 짓고 쌍계사란 이름을 붙이니 내원골은 그로부터 세상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천혜의 계곡이 되었다. 과연 "호리병 속에 별도의 천지가 있다"는 고운 최치원의 썰도 믿을 만하다.
길을 잃다 또 한번의 물길을 건너니 쉬엄쉬엄 놀자던 계획이 내원재로 바뀌어 있다. 내원재까지는 금방이니 바로 다녀와도 소은산막과 불일폭포는 탱자탱자 하면서 갈 수 있는 시간이 된단다. 그러나 털끝만한 차이가 천지현격이 된다고 내원재로 향하는 발걸음이 부지불식간에 윗길로 들어서 다른 계곡으로 들어가버렸다. 저너머 능선이 보이는데 앞서가던 이대장 아무래도 내원재 가는 방향이 아닌 것 같다며 되돌아 내려온다.
「화담 서경덕 선생이 길을 가다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왜 우느냐?" 물으니 "본시 장님이었는데 집을 나와 지팡이에 의지해 길을 가다 갑자기 눈이 환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눈을 뜨고보니 온통 낮선 세상이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화담선생 왈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그기에 네 집이 있을 것이다"」 연암집에 나오는 이바구다만 멀쩡한 사람이 길위에서 길을 잃으면 눈을 감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니 왔던 길로 되돌아 가는 것이 최선이다. 좀 돌아 내려오다 이 길 같다며 계곡 너들겅을 따라 올라가니 역시 길이 없다. 뭔가 잘못되었다. 위를 쳐다보니 능선은 아득하고 조릿대 숲은 울창도 하다. 이대장 지리산에서 제대로 길 잘못 든 것은 처음인 듯하다.
어제까지는 지리산에 비가 계속 왔고, 오늘은 마침 비가 오지는 않지만 하늘은 간간이 햇살을 비추다가도 이내 구름으로 가리곤 한다. 장마철인지라 산은 습기를 머금고 풀숲은 젖어있어 계곡을 제외하고는 무덥다. 계곡에서 제법 능선쪽으로 올라간듯하여 이제 15분이면 능선에 도착한다는 이대장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다들 쉬이 믿기지 않는듯 "에이, 한 시간 15분이겠지"라며 젖고 가파른 조릿대숲을 헤쳐올라가며 연신 땀을 훔친다. 과연 한 시간 너머 걸렸다.
능선에 올라서니 긴 조릿대숲 사이로 좁은 산길이 나오는데 상불재와 내원재 사이인 관음봉 인근이다. 바위에 오르니 구름 사이로 화개동과 반대편 청학동인듯 한 마을이 잠깐 비치드니 이내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능선길을 따라 내원재까지 가서 이대장이 가져온 얼린 대봉감으로 간식을 하고 전망바위로 간다. 전망이 멋진 우뚝하고 넓은 바위가 있으니 그기 가서 점심을 하잔다. 이재구 "간혹 내원재로 찾아드는 산꾼들이 길을 잃고 고생했다는 산행기들에 그 뻔한 길 왜 헤매는지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제 내가 그 꼴이 되었다"며 못내 아쉬워 한다.
단꿈 능선에서 조금 비껴있는 전망바위는 우뚝 솟아 높고 사방이 환히 보이는 명당이다. 넓기도 하여 모두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말리고 점심을 한다. 반주를 곁들인 가지가지 반찬으로 밥맛이 꿀맛이다. 남쪽에서 안개가 밀려와 사라지는 틈새로 산 아래가 간간이 비춰들기도 하지만 시계좋은 좋은 풍경을 기다리다 사진찍을 타이밍을 놓쳤다. 피로가 몰려오고 시간도 넉넉하게 남아 각자 자리를 잡고 오침을 한다. 눕자마자 코고는 소리가 들리고 단꿈에 젖는다. 찬기운이 으스스 밀려드니 벗어놓은 윗도리를 슬며시 찾아 덮고서는 다시 한잠 더 잔다. 한참 후 자기 코고는 소리에 놀라 깨었다며 이재구 일어나 내려갈 시간이란다.
내원재로 돌아와 길따라 하산하니 올라갔던 길 아닌 길 보다야 훨씬 낫지만 사람이 많이 출입하는 곳이 아닌지라 더러 길은 묵어 있기도 없기도 하다. 계곡 본류에 가까워지니 시원한 냉기가 폐부까지 밀려든다.
16:40분. 소은암으로 올라 불일폭포 다녀오는데 1시간 가량 걸린단다. 지쳤는지 다들 손사래를 친다. 카메라를 땅바닥에 놓고 타이머를 조절해 셀프 사진 한 장 내원골 증명용으로 찍는다. 아침에 건넜던 계곡으로 돌아오니 물의 유혹이 기다린다. 맑고 깊은 소에서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한 후 옷을 갈아입고 계곡을 따라 하산한다.
쌍계사 뒷편 구릉에는 약간의 텃밭에 고추며 박이며 호박 등이 자라고 스님들이 북을 치고 배우는 연습장도 있다. 북치는 연습은 대체로 초짜스님들 몫(?)이라 그런지 북이 아닌 큰북 모양의 형태만 매달려 있다. 닫혀있는 쌍계사 뒷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니 바로 대웅전 뒷편, 저녁 6시 10분이다. 대웅전에서 본 팔영루
팔영루는 신라 때 혜소스님이 불교음악인 범패를 가르치던 곳이다. 대웅전과 팔영루 중간에 최치운 선생의 명문장이 새겨진 진감선사 대공탑비가 서 있다. 쌍계사는 얼마전 범어사, 동화사와 더불어 총림으로 승격했다. 총림이란 참선을 위한 선원, 교리 강의를 위한 강원, 계율강의를 위한 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함인데, 이제 5대 총림에서 모두 8대 총림이 되었다.
한국 불교에서 쌍계사의 위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신라에 구산선문이 세워지기 앞서 혜소스님에 의해 禪의 향기가 전해진 곳이고, 육조 혜능의 정수리뼈를 모신 탑을 금당에 안치하여 초조 달마에서 육조로 이어지는 선의 맥을 잇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진 사찰이기 때문이다.
저녁예불 이대장과 둘이 저녁예불을 보기 위해 대웅전 밖에서 서성인다. 저녁예불은 보통 오후 6시경 시작하는데 기미가 없어 스님께 물어보니 6시 반부터란다. 큰 사찰의 예불은 예술미가 높다. 조용한 산사에서 법고 운판 타종과 수십명의 스님네들이 함께 하는 독경 등의 예불은 종교의식으로서 장엄할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오케스트라 연주 못지 않은 감동을 준다. 지휘자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달라지듯 예불의식도 사찰마다의 특성이 있는데, 이대장은 해인사에서 본 저녁예불이 마치 군대가 행진하듯 빠르고 격식이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통도사의 저녁예불이 좋아 간혹 시간에 맞춰 가곤 했는데, 관광객과 신도들이 어울려 혼잡한 것 같으면서도 장엄한 의식을 만날 수 있었다. 바램이 있다면 청도 운문사 새벽예불을 보는 것인데, 운문의 넓은 솔숲을 가르는 비구니 스님들의 청아한 목소리가 그리 좋다고 한다.
그런데 쌍계사의 저녁예불은 생각보다 약식이다. 북을 치는 법고소리만 나더니 바로 대웅전에서 예불이 시작되고, 예불에 참석하는 스님들도 많지 않아 대충 설렁설렁 하는 느낌마저 든다. 저녁시간 산사를 찾는 신도나 관광객들도 한산하다. 한국 불교음악의 발원지였던 쌍계사의 예불의식이 기대했던 것보다 간략한 것을 다소 아쉬워 하며 주차장으로 가니 먼저 간 세 명(박노욱, 송건주, 김택영), 아침에 "하산하먼 우리 식당으로 오세유"했던 그 아주머니 식당으로 찾아들어가 막걸리 마시고 앉았다.
이번 산행은 "여름날 소풍가서 놀다가 쉬다가 온다 생각하면 될 듯..." 했는데 오히려 뜨거운 맛을 보았다. 놀멍쉴멍 코스가 생각보다 길어져 소은산막과 고령암터 그리고 지리산 최대의 폭포 중 하나인 여름 불일폭포를 생략한 점이 아쉽다. 다만 내원골 그 길고 적막한 계곡 속 웅장한 물소리에 생각 하나쯤 덜어내고 올 수 있었다면 이번 산행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반추될 수 있지 않을까. 쌍계사 주차장에서 되돌아보니 산은 맨날 있던 자리에 그대로인데 내 생각만으로 산이 우떻고저떻고 했다. 一心不生 萬法無咎라! 한 마음 생기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언제....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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